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라이프

 
작성일 : 21-12-22 10: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박 교수님께


교수님! 주님 곁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시죠? 저는 신학연구원 시절 교수님의 제자예요. 출타 중이라서 빈소에는 찾아가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결례를 용서해주세요. 교수님은 신약신학을 전공하여 성경 주석을 저술하셨잖아요. 너무 부러웠고 존경스러웠어요. 제가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하거든요. 교수님이 우리글로 주석을 집필하신 것은 제게 매우 유익하고 절대 필요한 선물이거든요. 마침 제 동문이 저술하신 글을 교정도 보고 뒷마무리를 했어요. 그 덕에 주석이 출판되기도 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좀 얌체 같은 무례함을 범한 셈이죠.

당시 교수님은 보수신학의 거성처럼 가장 실력과 권위를 겸비한 대학자로 정평이 났었지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모든 신학적 이론이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문제를 성경적으로 해결하시려는 학적 태도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제가 졸업할 무렵에는 진보적인 색채가 농후한 교수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죠. 교수님의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거예요. 견디다 못해 보수신학을 표방하는 몇몇 후배 교수님들과 합력해서 신학교를 세우시기까지 하셨잖아요. 지금은 명실공히 신학대학원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진리 수호에 매진하고 있더군요. 지금도 교수님의 후배들이 보수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고 있지요. 진리 탐구에 열중하는 한 젊은이를 그 학교로 추천해준 사실이 있거든요.

교수님! 기억하고 계시겠죠.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정립되지 못한 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된 일이 있었지요. 1966년,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 운동이 각 대학 내에까지 번지게 되었잖아요. 우리 학교도 역시 예외일 수 없었죠. 전국 대학생들이 하나같이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데모가 불길처럼 일어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학생들 사이에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열띤 토론이 벌어졌거든요. 국민은 헌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나라가 독재자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요. 그런가 하면 국가가 종교를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종교도 국가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 누구도 명쾌하게 풀어줄 수 없었으니까요.

15세기 종교개혁 이후, 대대로 이어오는 ‘국가와 종교’ 또는 ‘국가와 교회’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정치학자나 신학자도 다 알고 있는 것이거든요. 급기야 총학생회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열어 교수님들의 의견을 듣자고 결정을 했지요. 특별히 박 교수님을 강사로 모시자고 결의했거든요. 전체 학생이 대강당에 모여 교수님의 등단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들을 대동하고 들어오셨잖아요. 학생들 사이에 논쟁하던 중이라 교수님이 어느 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실 것인지에 대해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거든요. 드디어 교수님께서 등단하셔서 말씀을 10여 분 이어가셨어요. 학생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느끼면서 실망하는 분위기였죠. 상황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니까요. 유교의 중용사상과도 맥을 같이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승자를 기다리는 학생들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교수님! 근래 한국 교회 전체를 대표한다는 목사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거든요. 청와대를 폭파해야 한다며, 하나님도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더라고요. 수많은 성도가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기도 하고요. 심각한 상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여겨지더라고요. 15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혁자들이 구교와 교리 싸움에만 몰두한 나머지, 성경을 성경대로 그 뜻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데는 소홀히 한 것을 알고 계시잖아요. 모든 이론이나 행위의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은 성경에 입각한 이성적 분별력에 따라야 하거든요. 특별계시인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만사 만물의 절대기준으로 작용하니까요.

종교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종교’ 문제는 여전히 신학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잖아요. 종교를 국교로 삼는 국가도 있고,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는 국가도 있고, 종교가 국가를 이용하기도 하고, 국가가 종교를 이용하기도 하고, 종교와 국가가 합세하기도 하고, 국가와 종교가 팽팽히 맞서기도 하는 원칙 없는 역사가 진행되어왔거든요. 이로 인해 교회가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아직도 정로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교수님도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신 것은 교수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의 당면한 문제잖아요. 이는 세속 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의 착오에서 발생한 것임을 성경에서 알게 되었어요.

세속적인 국가는 민주주의나 독재주의라도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 국가라는 점에는 다를 바 없잖아요. 그런데 신본주의 교회가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주의와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까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속 국가와 신령한 교회를 자신의 권세 아래 두시고 다스리시거든요. 때로는 세속 국가를 통해 음녀같이 타락한 교회가 되게도 하시고, 신부같이 순결한 교회가 되게도 하시거든요. 구약시대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도록 하셔서 블레셋에게 패하게 하셨잖아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 대적들을 물리치게 하셨지요. 그리스도께서 세속 국가를 도구로 삼아 교회로 수난을 겪게도 하시고 형통함을 누리게도 하시거든요.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완전할 수 없잖아요. 음녀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개혁을 통해 순결을 찾아가기도 하면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저는 세속과 짝하는 음녀나 다름없는 오늘의 교회가 본래의 순결한 신부와 같은 교회로 돌아가기를 소원하며 살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음녀의 수치를 조금이라도 버리기를 소원하며 ‘교회개혁론’도 집필해서 책으로 펴냈거든요. 교수님이 생존해 계시면 검열도 받고 추천도 받고 싶지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잠드셨기에 공개서한을 드리게 되었어요. 미숙한 제자의 무례함을 용서하시고, 편히 주무세요.



2021년, 교회개혁을 소원하는 제자 드림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 학장님께
최 교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