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신비주의 ‘비잔틴’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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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은 로마의 박해로부터 크리스트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현 이스탄불)로 옮긴 후 로마는 동, 서로 분리된 동로마제국을 말한다. 비잔틴미술은 동로마제국이 5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에게 정복되기까지 르네상스 이전의 천 년간 이루어진 미술을 말한다.
비잔틴제국은 로마의 계승자로 새로운 로마를 표방하며 영토를 크게 넓혀 라틴어를 사용하도록 하였고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가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띈 시대였다. 서로마제국은 교황이 제국과 교회의 수장이 되는 가톨릭 전통의 교황황제주의였지만 동로마 비잔틴제국은 동방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본받아 교황보다 황제의 권위가 더 우월한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따르는 황제교황주의 정치체제를 채택하였다. 사상적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법을 집대성하여 유스티니아누스법전을 편찬하였고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중세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을 중시하고 교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교리를 집대성한 신학대전을 완성하였다. 중세사회는 표면적으로 신본주의적 사회였으나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봉한다는 명분 아래 절대적 권력을 내세운 황제 중심제도의 인본주의 사회였다. 그러므로 황제의 권력과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점점 가속화 되어 갔으며 인간의 세속적 권위가 바벨탑처럼 높아진 사회였다. 미술과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비잔틴 미술은 유럽문화의 한 축을 이루는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비잔틴의 수준 높은 미술문화는 크리스트교가 타락한 기반 위에서 표현된 미술이다. 즉 화려하게 빛나는 성화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황제의 절대적 권위를 표현한 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성 비탈레 성당의 “유스티니아 황제와 시종들”이란 벽화는 12사도를 연상케 하는 12시종들과 중앙에는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등시 하는 영적 정치적 권위를 지닌 모습을 유리 조각 모자이크로 표현하여 무지개 빛 화려한 광채는 천상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순수한 신앙을 지킨 카타콤의 화가들의 신앙을 표현한 소박하고 단순한 미술과 대조적인 양상이다.
비잔틴 미술은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고 정치 사회 뿐 아니라 전 영역에 크리스트교 문화중심의 미술이다. 미술의 특징은 고대 헬라와 로마의 전통문화를 이어 받았으며 신비로운 동방의 문화요소를 융화시켰으며 특히 외형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헬라의 철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비잔틴 미술은 조각보다 교회 건축과 건축 내부를 장식한 회화에 많이 나타났다. 그리스의 사실적 묘사보다 종교적 엄격함과 성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과 보석, 동방의 비단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모자이크를 색유리로 장식하여 현실 세계가 아닌 초자연적 성스러운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모자이크는 돌, 유리, 조개껍질 등을 공예품에 붙인 그리스 로마에서 바닥 장식으로 사용하던 것을 조개껍질에 금박, 은박을 섞어 사용하고 색유리를 사용함으로 현란하게 비치는 광채로 신비스러움을 회화에 적용함으로 추상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비잔틴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회 건축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교회당을 성당이라는 미명으로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많은 교회를 지었다. 그는 비잔틴 제국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교회를 지었는데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에 지은 성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다.
성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성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바실리카에서의 긴 축과 같은 양식에서 천정과 돔이 떠받치는 중앙 집중적 구조로 돔 아래에는 40개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 가볍게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로마신전의 천정에서 느끼는 무거움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위를 보면 넓은 공간은 감동적인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주변의 네 개의 첨탑은 이슬람의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정복되고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성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아담 이래 일찍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훌륭한 교회”를 짓기로 작정하고 성 하기아 소피아를 지었다. 그리고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이겼노라”고 외쳤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그 교회에 들어가면 당장에 그것이 사람의 노력이나 근면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작품인 것을 느낀다. 그리고 정신은 하늘에라도 오른 듯 신이 바로 가까이 있어 택하신 이 거처를 기뻐하심을 깨닫게 된다.”고 소피아 성당에서 신국(神國)에라도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땅에 교회 건축물은 역사적 흔적이며 한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 유산일 뿐 보이는 교회가 영원한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당시 가장 아름다운 성 하기아 소피아 교회당이 이슬람사원이 되었고 하물며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도 지금은 이방의 회교당이 되지 않았는가. 참 성전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을 모신 성도의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