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충성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1-2).
“충성”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아만’이요, 헬라어로는 ‘피스토스’로서 믿음, 신실, 성실 믿을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구약적 의미로는 ‘어린아이를 돌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일언지하에 충성이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성실성이 만사를 아름답게 만든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충성할 때 이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이 된다. 이러한 충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본성으로서의 충성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미쁘신 분’, 즉 ‘믿을만한 분’으로 소개한다. ‘미쁘다’라는 말은 믿음, 신뢰의 파생어로서 신빙성, 신실성이며 경건한 약속, 증거, 담보, 보증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심으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음이니라”고 하였다(딤후 2:13).
하나님은 미쁘신 고로 모든 언약을 지키신다. 에덴동산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언약의 말씀을 전 역사를 관통하면서 자상하게도 성취해 가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미쁘심을 확연히 증거 하셨다. 노아의 보존언약은 오늘날까지 신실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언약과 땅의 언약과 왕권언약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문자적 의미를 능가하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향하여 신실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미쁘심이 그렇게 하신다. 만일에 하나님의 미쁘심이 폐하여진다면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 갈 것이며(욥34:15), 우주 전체도 질서를 잃고 마치 암흑 속을 질주하는 열차처럼 파멸을 향해 내닫고 말 것이다. 둘째로, 충성은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의 품격의 기본적 요소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닮아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도리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하셨으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하시기에 소홀함이 없으셨다(계2:10). 하나님께서 미쁘신 것과 같이 자녀 된 우리 성도들도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 간단한 명제가 지금 우리를 강권하고 있다.
형제와 형제사이에 자매와 자매사이에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회생활 전반에 있어서도 한 마디의 말이 보증수표와 같이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lip-service)이나, 눈에 보기 좋은 행동(eye-service)으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정작 그의 중심은 다른 생각을 품지 말고 일관된 마음으로 우리는 성도로써 위인의 충성됨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심을 반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삼상16:7).
지금 세상은 재능 있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 능력 있고, 건장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불신풍조가 만연해 지고 있다. 그 원인은 한 마디로 사회적인 ‘신실성 결여’에 있다. 신실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일들이 많으므로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해 한다. 불충이 가져 온 피할 수 없는 열매로 이 시대는 마지막 때의 고통의 장(場)으로 들어가나 보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마지막 때를 맞이하여 더욱 충성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겠다. 빗자루로 쓸어낼 수 없는 어둠은 빛으로써 소멸시키듯이 능력 있으면서도 충성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어둠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충성의 빛으로 말끔히 씻어나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