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서기 목사님께
“가두리양식장 같은 교회를 성장시켰으면 어찌할 뻔했어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미 잠드셨을까 봐, 조바심으로 인사드려요. 자주 모신다면서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제가 일명 ‘장자노회’에서 목사면직을 당했을 때, 7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도록 배려해주신 이른바 이단 목사예요. 제가 교회개혁 전에 한번 모시고 말씀을 경청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 당시 ‘선배 목사님이 오래 사셨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어요. 목사님과의 만남이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 잊을 수는 없거든요. 너무 아쉬워 지상에 공개서한을 띄우기로 했어요. 생존해 계시면 이 글을 보시고 기뻐하셨으면 좋겠어요.
목사님! 제가 일명 ‘장자노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아 면직을 당하게 된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1980년 봄부터 매주 목요일에 서울 명동에서 많은 젊은이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그 여파로 1982년 가을에 순복음 출신 전도사가 자기 매형 되는 일명 ‘장자노회’ 실권자 목사님을 통해 저를 고발한 거예요. 제가 성경을 강론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살면 금식하지 않아도 되고, ‘성전’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모이는 ‘교회당’이며, ‘십일조’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내 생명은 물론 내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으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며 사용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목사님! 맞잖아요.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요. 그런데 저를 금식과 성전 및 십일조를 부인하는 이단으로 몰아붙여 목사직을 제명하더라고요. 너무 한심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초야에 묻히려고 했지요.
세속권력이나 다름없는 노회 권력 앞에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다는 생각에서였죠. 교회 내부의 치부를 많이 보기도 했지만, 제가 실제로 직접 피해자가 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교회 일을 정리하고 아담한 농장을 경영하며 문서로 계몽운동이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어요. 서울서 100km쯤 떨어진 고속도로 주변에 3만여 평 되는 아늑한 구릉지 임야도 물색했거든요. 법정기일 이틀을 앞두고 갑자기 진리 싸움을 피하는 것은 가장 비겁한 행위라는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더군요. 초대교회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물론 옛 교회 개혁자 선배들이 생각났어요.
교회 헌법에 저명하신 선배 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총회에 제출할 상소장을 준비했죠. 서둘러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기 전에 중앙우체국을 찾아가 상소장에 우체국소인을 찍을 수 있었어요. 법대로는 차기 총회에서 판결해야 하잖아요. 그 후, 5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어요. 1987년 가을 이른 아침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어요. 수화기를 들고 “누구세요?”라고 하자, “당신이 ○ ○○목사요?”라고 묻기에 “네 그런데요. 누구신가요?”라는 말이 끝나자, “나는 이번 총회에서 서기 일을 맡은 김 ○○목사요.” 그 순간 “목사님 웬일이십니까?”라고 여쭈었더니 첫 마디가 “당신 억울하게 당했소. 내가 다음 총회에서 당신 살려냅니다.”라고 하셨잖아요. 꿈인가 싶어 “선배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목사님께서는 제72회 총회를 끝내고 돌아와 이튿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총회 서류를 정리하는 중에 제 상소장을 자세히 살펴보시다가 전화를 걸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 저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이 여호와의 전 재건하는 것을 대적이 방해하려 했을 때, 다리오왕이 곳간에서 고레스왕의 칙령을 발견하고 도리어 전국에 전 재건을 돕도록 명했던 역사적 사건이 기억나더군요. 일명 ‘장자노회’의 많은 목사님이 저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셔서 목사님을 통해 살려주신 것으로 확신하고 있거든요. 목사님 말씀대로 다음 해 73회 총회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복직했잖아요. 이로 인해 오랫동안 저의 굳어진 편향적인 사고가 금이 가기 시작한 생애의 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목사님! 저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어요. 성도들이나 목사님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속기도 하는 경우들을 허다하게 보아왔거든요. 저도 많이 억울하게 당하기도 했고요. 그 결과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 정신이 강하게 굳어지면서 냉소적인 성향이 싹트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이로 인해 편향적인 사고가 굳어지고 있었던 셈이죠. 흔치는 않겠지만 목사님과 같으신 분들이 상당히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결과 ‘계몽운동’에 심취했던 제가 ‘말씀운동’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 거예요. ‘계몽운동’은 저 자신의 긍지와 우월감의 발로이지만, ‘말씀운동’은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 자체의 운동력에 의한 수종자일 뿐이잖아요.
목사님을 통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은총을 입게 되었어요. 어느 대형부흥회나 기도원에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은총이죠. 자기 의를 내세워 공적을 쌓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능력만을 철저히 의지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잖아요.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수직적인 대변혁이 일어난 셈이에요. 그뿐만 아니에요. 목사면직을 당했는데도 교회는 계속 성장하더라고요. 목사직의 권위에 의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능력임을 실감할 수 있었죠. 승소 판결을 받은 후에는 한주가 다르게 성도의 수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잖아요. 설령 목사가 아니어도 하나님의 말씀만 올바로 전하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목사님! 천만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제가 정치 목사님들이 만들어 준 가두리양식장과 같은 교회 교주가 될 뻔했잖아요. 소속 교단이나 타 교단에서까지 저를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경계했으니까요. 교회의 부패상이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추종자를 결집하는 비겁한 방법으로 가두리양식장 같은 교회를 성장시켰으면 어찌할 뻔했어요. 교주가 되려고 안 해도 성도가 백여 명만 모여도 자신이 교주가 되어 행사하고 있다는 것조차 대부분 모르고 있거든요. 이것이 교회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사실 현대교회는 어쩌면 목사가 교주 아닌 교주가 되어 목회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잖아요. 목사님! 정말 너무 감사해요. 부디 오래 사시면서 후배 좀 보살펴주시고 격려도 해주세요. 존경합니다. 주 안에서 안녕히 계세요.
2022년, 편향적이었던 후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