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군상(群像) / 무너지는 총회
가스총이 등장하고, 언론이 통제되고, 목회자의 세습이 거론되고, 재산권 소송이 제기되고,
총회장의 유흥장 출입이 논제가 되는 총회.
총회헌법에 명시된 권한 가운데는 헌법을 제정하고 해석하며, 쟁론을 판단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견책하며 권계하고 변증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것은 성경적인 신학정립과 교회 및 노회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건덕을 세우는데 주력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적인 수준이 확립되어져야 하며, 인격적인 소양을 갖추고, 정치적인 세력보다는 공정성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총회는 다분히 정치적이며 세력화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병폐는 기독교의 부패에 일조하고 있다.
총회는 국회의원들과 같이 총회산하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노회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합이다. 건전한 교회에서는 가스총과 언론통제와 유흥이 용납되지 않는 것과 같이, 상급기관인 총회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대도 아니고 비상시국도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고 발설하며 가스총을 소지하고 휘두른다. 언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시대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총회 출입기자들의 입에서 언론탄압이란 볼멘소리가 난다.
이제 한국교회는 막장으로 치닫는 것인가. 북한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세습제도, 국회에서나 발생하는 폭력사태, 비즈니스맨들이나 이용하는 유흥주점. 이러한 행태가 교회와 최고 지도자들의 모임인 총회에서 거론되고 난무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수치이며 몰락의 징후일까 두렵기까지 하다. 총회장 선거 때 돈 봉투가 오고가며, 이단의 멍에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대통령 선거에 일부 유력한 교회가 개입하는 현실. 사회는 부패해도 종교는 변질되지 말아야 하는데, 기독교가 부패의 온상으로 변모하는 양상이다.
의식있는 지도자들은 각성의 구호와 회개의 기도로 호소한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이지러진 기독교를 개혁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이미 기독교는 물질의 마력에 사로잡혔으며, 명예의 사슬에 포로가 된 것 같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가. 목회자들이 모이면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해야 하건만, 교인들의 숫자와 연보액수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 성경을 논하면 수준 낮은 목사로 취급되고, 신학과 철학과 정치를 논하면 유식한 목사가 된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성경의 본질에서 이탈한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이단세력까지 활개치며 기독교의 정체성 훼손에 가담하고 있다. 여기에 일조한 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으며,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성도들을 헌법과 조직으로 얽매인 것에 있다.
성경연구는 일부 성경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연구에 무관심한 목회자, 성경해석의 실력이 떨어지는 설교자는 각성해야 한다. 교회는 목회자의 생업터전이 아니며 교인은 목회자의 생계수단이 아니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각성해야하며 개혁의 선봉에 서야한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학적인 접근과 교회의 정치체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성경적인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원리와 해석학적 체계 확립이 급선무다. 성경신학자 및 모든 설교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성경적인 기독교를 지향할 수 없으며, 난세의 기독교계를 개혁할 수 없다. 교계의 기득권자들이 각성하지 못한다면, 의식 있는 지도자들과 소신 있는 성도들이 제2 종교개혁의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 목회자는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장로와 권사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에 전념하고, 집사는 재정회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위시하여 모든 회합에는 이권이 개입되면 안 되고, 재산이 축적되면 안 되며, 세력화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적인 회합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해야 하며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