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뉴스

 
작성일 : 16-03-09 20: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동서독교회의 통일 노력은 우리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모델


제52회 기독교학술원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
banner

4 ⵶м 52ȸ ʱ⵵ȸ ǥȸ αǰ ϱȸ ʡ ߴ. © ⵶м Ȩ



지난 4일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은 과천소망교회에서 제52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를 ‘북한인권과 독일교회 사례’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이날 기도회는 장현승 목사(과천소망교회 담임)의 사회로 진행됐고,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가 ‘무화과 나무가 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발표회는 김영한 원장이 사회, 허문영 교수(통일 연구원), 정일웅 박사(총신대 전 총장), 박경서 교수(동국대 석좌교수)가 각각 발제 및 토론을 맡아 진행했다.
발표회 개회사에서 김영한 박사는 최근에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북한 주민 생존의 기본권과 사회적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독일의 통일에는 서독의 지속적 동방정책, 동독 라이프지히 니콜라이교회의 월요 기도회, 동독 인권 상황을 위한 서독교회의 교량적 역할(정치범 돈 주고 데려옴), 갑자기 다가온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을 놓치지 않고 통일 외교를 통해 동서독 통일로의 연결 등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서독의 동독 주민 인권정책을 배우고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이어 ‘서독교회의 동독 인권정책’을 발표한 허문영 교수는 “1961년 8월 13일 동독정부에 의해 건설된 베를린장벽은 서독의 무력함을 노정하는 정치적 사건이었으나, 서독정부의 독일정책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했다. 즉, “장벽건설 이전 서독의 독일정책은 주로 지정학적 차원에서 논의 되었지만, 장벽건설이후 독일정책은 인권정책으로 귀결 되었다. 왜냐하면 베를린장벽 건설은 동독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작업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동독의 비인권적인 체제는 종식되어야 한다는 합의가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서독교회의 동독 인권정책은 동독교회의 지원사업과 유기적 관계 속에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독교회에 대한 지원 사업은 △서독개신교에 의한 동독교회 지원 목적의 원자재 공급 △서독개신교에 의한 인도주의적(정치범 석방, 이산가족 상봉) 원자재 공급 △서독 가톨릭교에 의한 지원 사업 등 있었다”고 했다. 또한 동독교회 인권운동 지원에 있어서 “동독에서 인권침해와 독재에 대한 교회의 저항은 매우 중요하였으며, 서독교회는 재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했다”고 했다. 또 “동독교회는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적 공간으로, 주교구 관할의 접촉을 통해 서독사회와 연결했다”며, 그는 “동독 주민들의 92%가 기독교 또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동독사회에서 교회는 이중적 역할 즉, 동독정권에 협력하는 동시에 저항세력으로 존재하면서 감당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동독교회 목사들은 1989년 발생한 평화혁명과 반정부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으며, 서독교회의 동독교회 지원은 동독교회 활동을 활성화하고, 동독 평화혁명의 근거지가 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것에 대해 “독일과 한국 그리고 양국 교회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차이점이 있으나, 분단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독일은 평화를 목표로 삼고 노력한 결과 통일을 이루었고,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이 되기는 어려우나,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니콜라이교회의 평화기도회와 동독의 민주화’라는 주제로 발제한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는 “동서독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에 가장 모범적인 모델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전쟁에 의한 피 흘림의 통일이 아니라, 기적 같이 이루어진 평화통일(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일 배후에는 동서독교회의 노력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동서독교회의 통일 노력은 역시 우리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모델이 분명하다”고 했다.
정 박사는 니콜라이교회 평화기도회의 역사적 과정과 동독 민주화에 미친 영향 등을 열거하면서 결론에서 “최근에 벌어진 신 냉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남북한 정치적 상황은 평화통일의 기대를 허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니콜라이교회의 평화기도회가 보여준 평화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함께 비폭력으로 북한의 폭력에 맞서는 정신을 배양해야 하는 평화기도회가 한국교회 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북한 땅에서도 평화기도회가 시작되도록 또한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서독정부의 동독 인권정책(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은 우리)’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박경서 교수(동국대 석좌교수)는 서독 정부의 동독인권, 헬싱키 프로세스의 배경, 내용, 전망, Freikauf(자유를 삽니다)를 언급하면서 나가는 말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먼 훗날의 평화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서로의 상황은 많이 다를지라도 그래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게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독일 통일의 경험이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독일 민족의 분단극복과 통일의 문제는 여러 번 강조했고, 반복한 대로 정권 차원을 초월하여 추진되었기에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변하지 않았고 분단에서 통일까지 여야가 같이 상의하고 토론하였다. 그리고 이를 동독으로 가져가서 협상했음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독의 통일 비용의 책정으로 통일 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독일의 경험도 우리에겐 중요한 가르침이며, 정권 차원에서 노략질 당하지 않는 통일, 인권문제, 평화문제들은 여야가 같이 손잡고 추진해야 하며, 이상의 문제들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어야 함을 우리는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무력이나 전쟁으로써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인류의 3000년 역사에서 배웠다. 평화는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교훈을 우리는 배워야한다”고 전했다.
기독교학술원은 제53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를 4월 1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오성종 교수(전 칼빈대 신대원장)의 ‘사도요한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개최한다고 했다.

편집팀

제5회 기독 청소년 비전과 진로 컨퍼런스 개최
제59회 한국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