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배경사 산책 (1)
이야기를 열며
포털 네이버의 창에 일라이를 검색하면 ‘기독교인들을 위한 멍청한 영화’라는 리뷰가 6점대의 평점과 함께 첫머리를 장식한다. 다수의 혹평은 아바타를 누르고 흥행 1위를 차지했던 영화라는 수식어를 머쓱하게 하는데, 시작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채워지는 음울한 모노톤 또한 보는 이를 당황케 한다. 살인적인 햇빛과 물 한 모금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폐허의 세기말, 주인공 일라이는 그가 생명처럼 지켜내려는 책을, 우민통치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노리는 독재자 카네기의 추격과 맞서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한다. 덴젤 워싱턴의 화려한 액션에 초점을 맞추던 관객은 ‘더 록(The Rock)’의 별명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철통 감옥 알카트라즈의 등장에 아연한다. 신기에 가까운 전투력의 일라이가 실은 맹인이었다는 사실, 애독되던 책은 점자 성경이었다는 진실은 묵직한 반전을 이루고, 책은 잃었어도 오롯이 그의 머리에 저장된 성경 구절은 인고(忍苦)의 구술을 통해 단 하나의 The Book으로 남겨지게 된다.
‘성경 한 권의 절실함에 있는가’의 자문(自問)은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점자 성경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던 아름다운 몰입은, (문서화된 성경 자체의 신성시라기보다) 싸구려 기복신앙과 냉소적 세속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성경의 권위란 어떤 무게일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500여 년 전 개혁의 선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외쳤던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의 가치는, 너희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가르침을 타 종교와의 공존과 상생으로 해석하는 장로교단 모 신학 대학교수의 ‘열린’ 사고 앞에 케케묵은 아집처럼 들릴 뿐이다. 진보주의에 의해 고대 근동의 잡스러운 문서로 찢긴 성경은, 다른 한편으로 신구약의 영적 통일성을 고수한다는 보수주의에 의해 부분적 인용의 무모함으로 재차 갈가리 찢기고 있다.
세상의 어느 가치라도 역사의 중심 그리스도 예수를 특별 계시로 담고 있는 성경의 권위 아래 머물러야 한다는 당연론을 구약 배경사 산책의 서두에 장황히 밝히는 것은, 고고학을 포함한 어느 분과의 역사학일지라도 이스라엘 역사 구성의 ‘보조 자료’에 불과한 것임을 명시하고자 함에 있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근본적 주제를 전제하지 않은 채 파편적 사실들의 진위에 문헌비평의 고상한 아카데미즘으로 매달릴 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고전 4:6) 치명적 실족의 모습이란 명약관화(明若觀火)일 것이다. 성경의 뜻을 해명하고자 하면서 그 뜻을 성경에서 얻어내지 않는 자는 성경의 적(敵)이라 단언하던 ‘생각하는 갈대’ 블레즈 파스칼은, 반(反) 복음주의적 시류에 대항코자 집필했던 『팡세』(1670)에서, ‘예고된 바를 읽으라. 성취된 바를 보라.’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라틴어 문구를 남겼다. 인문학적 깊이 뿐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에도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던 그의 호교론(護敎論)에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 글귀 이상의 성경의 통일성과 관련된 구조적 깊이를 찾기는 어렵다. 이후 18세기 영국의 성직자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에 의해 성경 자체의 논리에 따른 변증보다 사변적(思辨的) 변증이 주조를 이루며 신학의 철학화는 더더욱 가속페달을 밟기에 이른다.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연표에는 익숙한 BC(Before Christ)의 용어가 BCE(Before Common Era)로 대체되어 있으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색채를 지우고자 하는 변화는 영미권의 점차적 추세이다. 의도했건 아니건 나사렛 예수가 머물렀던 전후의 자취, 곧 로마의 일반적 시정기(時政記) 혹은 당대 요세푸스나 타키투스 등 사가(史家)의 기록들은 역사적 인물 예수의 구체적 행적에 대한 기록에 있어 -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 그리스도를 따르던 무리)에 대한 기록은 등장할지라도 - 의아하리만치 함구(緘口)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섭리의 이유란 ‘오직 성경에서만’ 창세 전 작정하신 언약성취사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하심에 있음을, 나아가 타락한 인간이란 성경이라는 유일한 진리의 선물없이는 우주 만유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없음을 다시금 직시해 본다. 이처럼 성경의 절대 우위를 인정하는 대전제 아래, 성경 기록의 ‘증명’이라기보다는 기록하신 말씀의 역사 및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구약 역사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