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계승의 섭리로 늘 동행하신 자, 야곱
과수원 주변을 산책하던 장자(莊子)에게 과일나무에 내려앉은 까치가 눈에 띄었다. 활을 들어 까치를 쏘려는 순간, 나무에 붙어 즐거이 맴맴 거리는 매미 한 마리를 사마귀가 치켜든 두 발로 막 덮치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찬찬히 살피니 매미 사냥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마귀를 까치가 뒤쪽에서 노리고 있었고, 까치는 누군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줄 까맣게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팔려 닥쳐올 화근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친 장자가 활을 내던지고 돌이키자 이번에는 과수원 주인이 그를 도둑으로 오인해 욕을 퍼부었다는 우화가 『장자』에 실려 전해진다. 계략 속에 다른 계략이 감추어져 있고 이변 밖에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생기거늘 인간의 지혜와 기교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채근담』의 격언이 떠올려지는 한 사람이 있다.
여호와의 섭리에 순응하기보다 자기편에서 주도권을 움켜쥐려 때로 부도덕한 모략도 불사하였으나 발버둥 칠수록 헛똑똑이처럼 공허했던 야곱은 ‘발뒤축을 잡은 자’라는 의미처럼 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성명에는 더하여 사기꾼이라는 달갑지 않은 정의도 담겨있는데, 익히 알려진 팥죽 사건은 마치 봄철 보릿고개 때 당장 현금이 필요한 농민의 약점을 이용해 헐값에 추수기의 벼를 미리 사들였던 일제 강점기 악덕 상인의 입도선매(立稻先賣)를 연상케 한다. 형의 굶주린 약점을 시의 적절히 이용했던 야곱은 자신을 편애한 리브가와 모의해 앞이 어두운 아버지의 약점 역시 파고들어 낯 두꺼운 연기로 이삭을 속여 넘겼고, 두 번이나 기만당한 에서는 야곱의 살해를 다짐한다. 상식적 인정이라면 하늘로부터 위로의 사다리는 억울함에 절규한 에서에게 강림해야 하겠으나, 하늘의 문은 외가로 도망하던 중 황막한 돌밭 언덕 차디찬 돌베개를 베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야곱의 눈앞에 열리게 된다. 야곱의 비윤리적 행위와는 일절 관계없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정하신 뜻으로 말미암아 그를 거쳐 계승되어질 언약을 선포하신 여호와께서는 그가 어디로 행하든 지키실 것이며 그에게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창 28:15) 확약해 주셨다.
위로처럼 내린 은혜를 품고 벧엘을 떠나 하란으로 향했던 야곱을 기다리고 있던 건 그의 행실에 대한 보응처럼 여겨졌을 기나긴 기다림의 고난이었다.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라고 어찌 조카인 너를 공으로 부리겠느냐 환대하던 외삼촌 라반은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칠년을 수일처럼 여겼던 야곱의 순정을 철저히 이용해 재산을 증식한다. 끼워팔기(tie-in sale) 식으로 레아를 떠넘긴 라반은 라헬을 주는 조건으로 재차 7년을 더 봉사케 했고 품삯을 정한 뒤의 6년까지 도합 20년의 갖은 설움을 안겼으나 야곱에게는 여호와께서 언약을 아로새기신 벧엘의 꿈이 있었다. 남의 약점을 파고들던 자신의 방식처럼 고스란히 약점을 잡혀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뎌야 하는 질곡(桎梏)의 세월을 겪던 야곱이었으나, 인과응보의 한탄보다는 약속하신 뜻을 따라 평안히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창 28:21) 믿음의 열망을 간직케 하셨기에 하루하루를 담담히 감내하지 않았을까.
인고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벧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라반과의 관계를 마무리 짓고 언약의 땅으로 귀향하던 야곱은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라 밝히던(창 30:33) 당찬 신앙은 온데간데없이 그 분의 보호하심이 많은 소유를 이루게 하셨음을 체험하고도, 그 분의 군대가 굳건히 함께하심을 목도하고도 다시 자신의 술수를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에서를 주라 부르는 비굴함,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모면해 보려는 치졸함, 담대히 먼저 형을 찾아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남자다움은 고사하고 식솔들을 먼저 발행케 한 비겁함 등 온갖 비신앙적 꼼수를 보이던 야곱이었으나 여호와께서는 얍복 나루터 씨름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주셨다. 이 상황의 의미를 두고 기만자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한 분투자로의 변화라는 둥, 넓적다리뼈가 부러지기까지 끈질기게 매달리는 갈구의 집념이라는 둥 각종 어지러운 해석이 난무한다.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전능자의 정하신 뜻 따라 이루어짐을 의지하기보다 그저 몸만 멸할 뿐인 인간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했던 소심함을 고백해 본다. 그러나 그 소심함을 주셨기에 홀로 가슴을 쳤던 때로의 고독이 자리했고, 그 고독을 주셨기에 말씀과 기도를 통한 여호와 사랑의 동행은 한없이 충만한 감사의 이슬로 맺혔다. 어느 길 위에서건 변함없는 사랑으로 동행하신 여호와께서는 에서를 두려워하던 야곱을 질책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야곱이기에 아버지 하나님은 기꺼이 얍복강 승리를 허락하심으로 용기를 더하셨고, 또한 증오에 불탔던 에서의 마음을 용서의 정으로 승화시키셨다. 시련 가운데 언약에 근거해 간구하는 지혜를 열어주신 야곱의 하나님은 오직 당신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가운데 세세한 성장의 계단을 치밀하게 예비하셨으며, 그런 신실하신 여호와의 통치를 신뢰하기에 우리 언약 자손의 매 순간은 현세와 내세의 이분(二分)이 아닌 지상에서부터 누리게 하시는 천국의 기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