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믿는 건 신인가 인간인가
영화 <더 마스터 (The master)>
우연한 계기로 한 대형교회 목사의 생일 파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국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친구가 보내준 사진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훑다가 뭔가 싶어 다시 확인했다. 잠실 주경기장을 꽉 메운 인파, 트랙을 돌며 퍼레이드를 하는 행렬, 좌석별 현수막과 카드섹션, 경기장의 한가운데 마치 대통령과 영부인처럼 앉은 한 목사와 사모. 얼핏 보면 세계인이 모여 4년에 한 번씩 여는 올림픽 행사와 올림픽을 폄훼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다만 그 무지막지한 스케일 면에서의 비슷함을 말한다- 다를 바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실소가 나왔다. 목사의 모습을 그대로 카피한 대형 바람인형을 봤을 땐 송충이가 등줄기를 지나가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상식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겠지. 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참여하게끔 만든 사람도 모두. 결정적으로 운집한 사람들의 에너지와 물질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종 싱글벙글한 목사의 얼굴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도대체 그들이 믿고 있는 건 누구일까. 하나님일까, 아니면 그 목사일까.
<더 마스터>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프레디는, 소규모 사이비 종교와 형태를 같이 하는 심리연구 연합회에 들어간다. 그곳 마스터의 실험 대상이자 친구 겸 조력자로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나 프레디는 곧 그가 진정한 마스터가 아니며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불완전하고 욕망이 있는 한 인간임을 알게 된다.
프레디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믿었던 것은? 프레디는 심리연구 연합회의 핵심 테제를 믿은 걸까, 마스터라는 인간을 믿은 걸까. 프레디는 무엇으로부터 실망했을까.
사실 내가 일일이 다 확인하고 알아보기 번거로우니까, 이것을 주창한 마스터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구원까지 다 얻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냥 당신에게 다 의탁하겠다. 그러려면 당신은 더 완벽하고 더 뛰어나고 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아, 애초에 당신은 그런 사람 아니었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바로 이 지점이, 영악한 종교자들이 제왕 노릇하며 신도들을 농락할 단초를 제공한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뒤바뀌었음을 의미하는 사자 성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부러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에서,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일까 교회라는 하나의 집단일까. 내가 공부하는 것은 성경일까, 확신으로 겹겹이 무장한 이론 그 자체일까. 방법에 함몰되어 진짜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그 방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심 없는 순수한 교회의 지도자라면,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한 영광이 모두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천금 같은 시간과 물리적 지원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업고 강단에 섰다면, 그곳에서의 귀결은 결코 자신의 교회, 자신의 세력, 자신의 성과물에 비춰져선 안 된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성도들에게, 당신의 삶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 지난한 아픔 역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과정이요,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영원을 주장하시는 분이 그 하나님임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그에 대한 고상한 지식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세속에서도 치이고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교회에서 만큼은 따듯한 안식과 쉼, 말씀으로 빚어지는 위로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분은 유일하고 영원한 절대신이며, 당신들이 이곳에 모여 교회가 된 것은 그 신의 창세 전 영원한 언약에서 출발한 당신들을 택하고 자녀 삼아 사랑하심이라고 말해야 한다.
본말전도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치챈다 한들 바꾸기도 쉽지 않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함이 아주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말씀의 칼 날 위에서, 성경을 통해 주어지는 지혜로 정확하게 분별할 줄 아는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