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존재감을 찾아서 <불안> 그리고 <HER>
가난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불안은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사실에서 싹튼다. 흔히들 셀러브리티라고 이야기하는 스타나 저명인사, 재벌들은 일거수일투족이나 가족의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대중에게 노출되고 보고될 만큼 강력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곧 그들의 존재감을 의미하며, 반대로 그러한 위치에 있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은, ‘내가 죽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지점에서 파생된다. 즉,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자신의 존재감이 위협받는 데서 온다는 것.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의 서두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HER>이라는 영화가 있다. 상당히 묵직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존재감’에 포커스를 맞추어보고자 한다. 머지않은 미래, 별거 중에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OS를 만나게 된다.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조그마한 기기와 보청기 모양의 이어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아내에게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털어놓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하나의 인격체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다만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무형의 세계에서 ‘육체’없이 자유로이 머물 뿐이다. 그녀와 남자는, 다른 커플들과 함께 더블 데이트도 한다. 그녀의 재치와 유머는 어디에건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업데이트’를 하느라 사라진 잠시동안,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질 지경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업데이트’를 끝나고 돌아오는 그때, 지하철 계단에 앉아 OS 기기를 들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는 찰나적인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동시에 대화하는 사람이 천여 명 이상,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육백여 명 이상인 것. 남자는 자신의 우주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그러한 방식으로 남자를 사랑하게끔 된 알고리즘이기에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연인에게 전부이자 절대인 오직 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 남자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고통이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것이 사건인 이유는, 나를 알아봐 주고, 전적으로 받아들여 주고, 왜곡 없이 이해해 주고,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어여삐 여겨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아봐 준다는 것. 내 가치와 내 진가를 인정하고 내 삶과 시간을 통해 축적된 의미들을 공감하는 것. 그것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자, 나의 존재감이 천 프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조차 없어 더 완전하고 완벽하고 영원한 것을 찾는 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우리는 늘 기대고 또 기대하며 인정받기를 원한다. 어떻게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고 영향을 미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탓이다. 세상의 박수와 관심은 마약과도 같다고 한다. 취하고 잡으려 할수록 그것은 멀어지고 그리하여 더 집착하게 되며 결국 나를 망가뜨려 껍데기뿐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 전, 영원에서부터 당신과 한 몸이었던 나를 어여삐 여기시어, 당신을 더 세밀하게 배우도록 이 땅에 내려 보내시고, 그 배움이 맺음하는 날 돌아가 쉴 곳까지 만들어 놓으신 그분이, 그분의 눈동자가, 내게 머물러 있음을 안다면. 누구도 거스를 것 없는 당신의 절대적인 뜻과 의지로 나를 택하시고, 내가 구성원으로 머무는 이 교회를 향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고 있음을 안다면.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인, ‘존재감’ 그 자체인 여호와께서, 내가 진창에 뒹굴 때도,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를 때도 늘 나를 지켜보며 엄지를 척 세우고 계심을 안다면.
‘내가 만든 피조물 중 너는 가장 아름답다,
지금 네 하루는 내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하루이다. 네 영혼은 숭고하며 그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보물이다. 네가 걸음하는 진리의 터인 교회는 내가 귀중히 여기는 자들이 그 귀중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끊임없이 말씀해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안다면, 한낱 인간들의 박수갈채 따위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