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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와 이재철 목사의 인생대담 두 번째
문학은 상징으로, 교회는 교회의 본질로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
이어령 교수는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17일)에서 지난달에 이어 ‘1956년 ‘우상의 파괴’발표 직후부터 1962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까지의 인생여정’을 펼쳤다.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교회 담임목사)와 함께 한 이번 대담은 이승만 정권 하에서도 ‘저항문학’을 추구한 이어령 교수가 4•19 혁명 이후 ‘순수문학’으로 돌아서게 된 이유를 듣게 되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문학세계에 대해 세 개의 언어 즉,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의 언어’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언어’,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오르페우스의 언어만이 상충하는 것을 하나로 묶는 결합의 언어로, 생명이자 사랑이며 함께 어우러지는 화해의 언어로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 역사에서도 프로메테우스의 언어처럼 투쟁하는 교회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는 4•19 혁명의 언어로는 상처를 씻을 수도 없고 헤르메스가 되어 소통시키고 봉사하려했지만 소통만으로 창조할 수도 없었을 때 오르페우스의 피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3단계가 제 문학 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가족들이 거쳐야 할 투쟁에서 미디어, 창조와 공감의 세계라는 단계’라며 자신의 삶도 갑자기 개종해서 기독교를 믿게 되어 생명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하니라 연속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재철 목사는 ‘저항의 문학’에서 저항의 정점인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신문기자 같았으면 거명하겠지만, 문학가는 복합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고 말하며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타고 없어지지만, 헤르메스나 오르페우스의 문화는 1-2천년이 지난 후에도 역사를 올라탈 힘이 있다”며 문학은 “케이스가 아니라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비겁해서가 아니라 저항은 아무리 정의롭더라도 절대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재산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길 뿐 창조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문학으로 전혀 다른 세계인 참된 참여, 영혼의 참여를 했으며 기독교인들이 알아주지 못하면 절망적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가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 문인이자 교수라는 역할로 인해 “언론인이 아니었다면 사소한 기쁨이나 악에 대해 눈감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언론인 생활을 하게 돼 현실감각과 높은 차원의 상징적 세계를 잘 어우를 수 있었다”며 시대적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재철 목사는 ‘정치권의 구애를 거절하신 구상 선생님처럼 평생 문학인의 길을 걸으셨기 때문에 우리 내면세계를 이렇듯 풍성하게 해 주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교수는 대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세 가지 언어를 말씀드린 이유를 외형적 선악, 제도적 선악이 아닌 영혼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누가 적인지도 모르고 도와주게 되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언어는 가장 흔한 말인 생명과 영혼, 사랑”이라고 했다. 새롭지 않고 어제도 들은 듯 한 말이지만 이런 시대에 “사랑과 생명을 이야기하는 바보”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막스 베버의 ‘dennoch(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해 설명하며 기독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지 ‘열심히 믿었는데 왜 이러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기도할 때도 절대로 ‘뭐 해 주시면 뭐 해드리겠습니다’ 하면 안 된다며 온갖 부조리와 수모, 불의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이 세상이 천국인 줄 알고 살면 큰일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학은 문학 속에 정치, 사회를 여과하여 지속적으로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교회는 교회의 본질로 사회를 끌어들여야지 교회의 문법을 버리면서까지 사회를 끌어들이는 것은 말만 교회이지 정치나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며 교회로서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령 교수의 인생대담은 양화진문화원(www.yanghwajin.re.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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