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하늘의 목탁
儀封人請見 曰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의봉인청현 왈군자지어사야 오미상부득견야.
從者見之 出 曰二三者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 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종자현지 출 왈이삼자 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 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논어』 「팔일」의 계속이다.
의(儀) 땅의 봉인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였다. “군자가 이곳에 오셨는데 내가(의봉 사람) 일찍이 (그 군자를) 뵙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인이 뵙게 하니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서)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들이여 (공자의) 벼슬 잃음을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이 땅에 도가 없게 되었는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장차 선생(공자)을 목탁으로 삼을 것입니다.”
의는 위나라에 속한 땅이다. 봉인은 국경을 맡아 담당하는 관원이다. 이 관원은 지혜로운 사람인데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은둔하여 살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자는 현자를 가리킨다. 이 봉인이 군자가 자신의 지방에 왔을 때는 다 만나보았다고 말한 것은 지금까지 그가 현인을 만나왔으니 이제 공자를 기필코 만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공자를 수행하는 종자가 봉인으로 하여금 공자를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이 당시 공자는 사실 위나라에서 벼슬을 얻지 못해서 그 땅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그가 위나라를 떠나는 국경에 이르렀을 때 봉인이 공자를 만났던 것이다. 봉인은 공자의 인물됨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공자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선생이 벼슬을 잃은 것을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봉인이 보기에도 그 당시는 위나라를 포함해서 세상에는 도가 행해지지 않는 상황이 오래되었었다. 아마도 봉인은 누군가 현인이 나타나서 이 무도한 세상을 깨우칠 사람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기회만 되면 군자(현자)를 만나고자 하였던 것도 무도한 세상을 깨우칠 인물을 만나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공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공자의 인물됨이 하늘이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의 목탁이 될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목탁은 밤에 파수꾼들이 지키는 곳에 위험이 닥쳐오면 그들의 성읍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의 땅의 봉인은 비록 국경을 관리하는 하급관리에 불과하였지만, 공자가 위나라에서 벼슬을 얻지 못한 것이 공자가 이 무도한 세상을 깨우는 목탁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본문이 그리스도인에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의 땅의 관원처럼 세상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보고 이 세상을 구원할 자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은 약육강식의 사회처럼 되어 평화와 화합이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세상은 의심과 증오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상의 실상을 늘 바로 보고 이 세상을 사랑과 화해의 세계로 건져낼 자를 기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공자와 같이 세상을 일깨우는 목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세상을 생명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분은 죽음의 세상에 참 삶을 알리셨다. 지금도 세상의 근본적인 변혁에는 기필코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내재한다. 그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질투를 사랑으로 바꾸고, 세상의 경쟁과 투쟁을 섬김과 화해로 바꾸고, 세상의 조급함을 인내와 너그러움이 있는 세상으로 바꾸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살아 숨 쉬는 동안 죽음을 향해 가는 이 세상을 경계하는 파수꾼들이 되자. 세상의 타락을 염려하며 돌이키는 자들이 되자. 믿음의 주이자 우리와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죽음의 세상을 생명의 세상으로, 질투와 멸시의 세상을 사랑과 존경의 세상으로, 경쟁과 다툼의 세상을 양보와 화목의 세상으로 바꾸자.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가 맡겨 주신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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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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