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열다섯. 러·일전쟁과‘지혜’의 이동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6).
인용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통해 부르게도 하고 기록하기도 한(행 4:25) 시(詩)다. 여호와께서 세우신 기름부음 받은 자(선지자·왕·제사장 가운데 맥락 상 왕)를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과 관리들의 어리석은 처사(處事)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웃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왕으로 삼은 다윗 왕은 인생에서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다윗왕에게 손해와 파멸의 과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경외케 하려는 놀라운 신적 섭리의 역사였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다윗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더 깊이 통찰하게 된다. 자신이 진정한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실 진정한 왕 메시야를 분명히 대망(大望)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에게 준 나라들은 기껏해야 주위의 열국(列國)들이지만 장차 오실 진짜 왕 메시야는 땅 끝 모든 세상을 지배하게 될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모든 악을 심판하신다는 예언도 확신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관리들은 오직 여호와만 경외할 것을 권한다.
이스라엘 왕 다윗의 이러한 여호와 찬양의 예언시를 통해, 삼천여 년 전에 다윗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존재하심과 능력을 (언약하신 대로 유럽에서 ‘참 지혜’의 말씀을 이동시켜) 이 시대 우리에게도 보여주셨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현재 소개하고 있는 야벳 족속의 창대함을 동쪽에서 이루었던 러시아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150여년 전 이 땅에 전해진 진리의 황혼기에 접어든 서양에서 떠난 ‘참 지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에 ‘천국’이 확장되는 초기 단계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야벳 족속들이 침략하여 치열하게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결국 그것은 다윗의 고백처럼 ‘허사(虛事)를 경영’한 것이 되고 우리에게는 여호와 경외함을 알게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 된다.
19세기말 러시아는 아시아로 눈을 돌려 팽창주의의 열을 올린다. 1860년 아무르 강 태평양 연안지방을 점령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1875년에는 사할린 전체를 차지하는가 하면 투르키스탄과 이란 북부 투르크멘도 빼앗는다. 19세기말에는 중국의 요동반도를 얻는다. 이러한 팽창은 당시 군국주의의 발전을 꾀하며 아시아 전체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의 욕심과 충돌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계속해서 요동반도 끝자락 여순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가 하면 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당시 차르 니콜라이 2세(1894∼1917)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 조선에 대한 두 침략자의 갈등은 결국 러일전쟁(1904~5년)을 촉발시킨다.
이 러일전쟁은 제정(帝政) 러시아의 종말을 고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국내에는 연이은 반란으로 혁명의 뇌관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게 했다. 그 무렵 1905년 ‘피의 일요일’로 불린 사건으로 군인들의 총탄에 시민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군인들의 폭동도 잇따랐으며 5백년 제국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이 종말을 더욱 가속한 사건이 한국과 만주의 침탈을 욕심내던 두 세력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 ‘러일전쟁’이다.
요동반도는 청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먼저 점령한다. 그런데 청나라는 일본에 맞서기 위해 비밀리에 러시아와 동맹을 맺으면서 여순과 대련을 러시아에 25년간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그 무렵 조선에서도 을미사변 4개월 후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일(아관파천)이 발생하면서 러시아는 조선도 손아귀에 넣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나약해진 우리나라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일본은 여러 차례 회동(베베르-고무라 각서,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 로젠-니시 협정)을 가지면서 조선을 자기들 좋은 대로 갈라먹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러면서 일본은 러시아를 제압하기 위해 몰래 영국과 미국에 사람을 보내 유사시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도와준다는 동맹을 맺는다. 이럴 때 러시아는 길림성(吉林省) 전역을 점령하는가 하면 조선에 대한 침탈을 목적으로 압록강 근처 용암포를 군사기지화했다.
일본은 만주에 대한 러시아와의 공동 지배권을 요구하면서 조선에 대해서는 자신들만의 지배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만주의 독점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조선의 39° 이북은 일본이 손댈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을 놓고 벌이는 이러한 쟁탈전은 결국 1904년 일제의 각료회의가 러시아에 대한 개전(開戰)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시작한 러일전쟁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가 되어버렸으며 두 나라는 100여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면서, 일본을 돕기로 했던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중재로 일본에게 유리하게 끝났다. 당시 루스벨트는 하버드 대학 자신의 일본인 친구 가네코의 요청을 받아 독일과 프랑스에게 만약 러시아의 편을 들면 자신은 일본 편에 서겠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다른 서방들의 러시아 지원을 차단해 주었으며 전쟁 중에는 미국과 영국이 상당한 자금을 일본에 빌려줬다. 그래서 이 전쟁을 ‘러일전쟁’이 아니라 ‘미영일 연합군’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한가운데 나약하고 불쌍하고 관료부패가 극에 달했던 조선왕조가 그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 뼈아픈 우리 역사의 슬픈 장면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좋아서 미국과 영국이 일본 편에 선 것은 아니다. 아시아로 팽창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러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서구 열강들은 일본에게 각각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하는 밀약들을 맺는다. 조선 침탈을 인정하는 미국과 일본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밀약을 바탕으로 일본은 조선 침탈의 마지막 시나리오를 끝낸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가장 우월한 지위와 요동반도 조차권 및 러시아로부터 중국 철도 사용권을 획득한다. 을사조약으로 조선을 강탈하는 일본의 계획은 ‘제3의 로마제국’의 꿈을 아시아에서도 실현하고자 했던 러시아가 일시적으로 참패하면서 이루어졌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본과 서구 침략자들의 이권 쟁탈과 전쟁 사이에서 조선은 망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탐욕의 서구열강이 그 손에서 ‘성경’을 내려놓고 전략무기로 아시아를 침략하던 19세말과 20세기 초 우리에게는 ‘하늘의 지혜(智慧, sophia)’(잠 8:22~31)가 옮겨지고 있었다.
<170호에 계속>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니체가 본 현대인의 ‘자유’: ‘야만’으로 향하는 여행 |
니체의 ‘종교개혁’: 부(富)를 탐내는 자들의 비열한 싸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