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스물. 존 칼빈을 주관하신 하나님 지혜(소피아) <2>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위의 본문에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 개념들과 기독교 예정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예정의 주체와 근거와 내용, 방법과 대상과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신령한 복, 선택, 사랑, 거룩, 예정, 하나님의 아들, 은혜의 영광 등 기독교의 정체성을 총망라한다. 예정(豫定)의 주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선택 근거인 그리스도, 내용은 신령한 복, 선택시기는 창세전, 대상은 우리 곧 하나님의 자녀들, 목표는 거룩하고 흠없게 하심, 선택 목적은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 찬미다. 기독교의 다른 진리와도 연관된 개념들도 있지만, 우리는 종교개혁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운동(히 4:12)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소피아(지혜)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이 본문을 근거로 삼고자 한다.
본문의 중요함은 종교개혁 당시 서유럽에 너무도 큰 충격으로 드러났다. 서유럽을 지배하던 중세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주장인 인간 공로에 의한 구원관을 뒤집어 놓았다. 이른바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이중예정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난 개념인) ‘짐승’과 ‘음녀’ 노릇을 하던 중세 로마 가톨릭의 천년 폭정에 대한 전 유럽의 항거(抗拒)를 낳았다.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구원론으로부터 해방되자 유럽은 종교적 혁명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혁명과 또한 로마 가톨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 전쟁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님의 지혜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운동이 전개된 중요한 지역이 16세기의 스위스였으며 결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도시 중 한 곳이 바로 제네바였다. 하나님의 지혜는 프랑스 출신의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그의 동역자들을 세웠다. 이들을 통해 앞서 소개한 본문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기초를 둔 성경적 교회를 건립하도록 했으며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정수(精髓)임을 교회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정치 그리고 교육과 경제와 노동 분야까지 확대 적용케 했다.
사실 예정론은 칼빈보다 먼저 종교개혁 운동의 신호탄이었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도 강조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루터의 예정론은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를 중심으로 한 그의 동료들이 행위를 강조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시하였으므로 루터파를 통해서는 예정론이 핵심 진리로 부각하지 못하였다. 지금도 루터교는 예정론을 강조하지 않으며 구원론과 관련에서는 종교의식 면에서 로마 가톨릭의 연장선에 있다. 성찬식 빵과 포도주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임재한다는 명제는 로마 가톨릭보다 더 집착하기도 한다. 이중예정론은 유럽의 종교분위기를 확연히 바꿔놓았다. 그야말로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복음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은 위로와 힘이 되어 점점 더 듣기 좋은 복음이 되었고, 듣기 싫은 사람들에게는 부당하고 기분 나쁜 점점 듣기 싫은 소리가 되었다.
칼빈의 중요함은 그가 쓴 고전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에 있지만, 그 지적 작업을 위해 성경주석과 성경강론에 더욱 몰두했다는 점이다. 즉 칼빈 지혜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였다. 사실 칼빈 이후 개혁파 신학의 발전과 몰락은 성경에 얼마나 바탕을 두느냐가 결정했다. 나아가 기독교 진리의 유일한 원천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할 수 있느냐가 서유럽 개혁파 신학의 존속과 종말의 시기를 결정했다. 기독교 교리의 원천이 성경인데 성경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은 진리의 원천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진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엄격한 섭리 역사가 서유럽에 닥쳐왔던 것이다. 칼빈 이후 서유럽에 불기 시작한 성경 자체에 대한 논란들은 근대에 들어 고등비평, 역사비평, 문서편집설로 인해 서구 신학은 뿌리째 흔들렸다. 그 결과 현재 서유럽에서 ‘성경의 절대권위’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칼빈은 사실 기독론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 신성과 인성과 관련해 ‘구분도 분리도 되지 않는다’는 칼케돈 공의회 전통 즉 가톨릭 전통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리고 성찬식 교리에서도 그는 가톨릭에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실재로 임재하심’과 ‘성찬식의 종교적 의식’의 상관관계를 칼빈은 명확히 구분도 했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분리하지도 않았다.(앞의 책, 442-443) 이러한 특별한 종교의식인 성찬식을 통한 그리스도 임재하심의 여부에 대한 칼빈의 애매모호함은 향후 개혁파 교회가 결국 로마 가톨릭의 성찬식을 따라가는 빌미를 주었다고 본다. 칼빈은 특별한 종교적 의식으로서 성찬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루터나 루터와 상이한 입장이었던 취리히 종교개혁가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성찬식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루터는 종교의식과 그리스도 실재를 과도하게 일치시켰다고 비판했으며, 츠빙글리에 대해서는 성찬 의식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고 비판했다. 츠빙글리에 대해 칼빈은 빵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식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히 인도하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오래전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가톨릭 미사에서 빵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미사어구(美辭語句)인 ‘그대의 심장을 들어 올리시오’(Sursum corda)라며 사용해 오던 것이었다.(앞의 책, 443)
종교개혁자 칼빈의 이러한 생각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물론 성경으로 돌아가서 확인해야 하며 확인할 수 있다. 글의 흐름상 칼빈 사상의 내용에 대한 세밀한 평가와 비판보다는 칼빈의 성경진리의 이해와 주석의 치밀함 부족 그리고 그 결과 신학적 입장의 애매함과 모호함이 향후 개혁파 신학에 신학적 미숙함과 혼동을 낳았다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칼빈의 미숙함이 근본 원인일 수는 없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가 16세기를 지나 이곳 극동까지 오는 길을 따라가 보면서 이곳 한국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유일한 절대진리로 확증해 주신 무한한 은총의 역사(www.ibt.or.kr)를 통해 하나님의 로고스(logos, 말씀)와 하나님의 소피아(sophia, 지혜)를 찬양하려는 것이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18)
<180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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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부모를 섬길 때…… |
의리와 이익, 어디서 깨우쳐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