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존재’와 ‘비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생성논리를 증오하다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에게 아주 비상한 추상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착상은 ‘오직 존재자만 있고, 비존재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존재자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대의 배리(背理)입니다. 그 표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예리합니다. 왜냐하면 그[파르메니데스-필자 주]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자보다는 비존재자의 요소에 관해 이야기해 왔는지를 자신에게서 느끼기 때문입니다.(*강조는 원전 강조임)
문헌학자 니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자신의 향후 모든 철학적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결정적인 사상가 중의 한 명이 파르메니데스이다. 물론 니체가 파르메니데스의 추종자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니체를 생성의 철학자, 의지의 철학자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마틴 하이데거가 했듯이, 서양의 마지막 형이상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고려하면, 니체 철학은 존재의 철학에 가까이 있음도 분명하다. 인용한 원문으로 돌아가 보면, 니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철학이 탄생한 이유는 ‘비존재’ 때문이라고 한다. 비존재를 가볍게 여기고 그래서 존재를 너무 하찮은 것으로 평가하여 서로 쉽게 뒤바꿔버리는 사유 행태에 대해 파르메니데스는 불편했던 것이다. 그는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를 너무도 쉽게 승인하고 마치 그 대립을 수용하는 듯 호언(豪言)하는 자들을 증오했다. 모든 것이 쉽게 쉽게 다 변한다고 말하는 헤라클레이토스주의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증오 대상이다. 이하에서는 ‘존재 철학자’의 상징인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적 사유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철학의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는 ‘존재’ 문제를 니체 또한 향후 어떻게 처리해 가려는지 그 배경지식을 마련하고자 한다.
남유다가 바벨론제국의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주전 516년)할 무렵 그리스령 이탈리아에서 ‘엘레아 학파’의 시조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주전 515년경-사망 미상)가 출생했다. 그의 스승은 여행가이며 그래서 음유시인(吟遊詩人)이었고 종교가였던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60-478경)이다. 크세노파네스는 인간 존재를 어떻게 하면 개선하여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골몰하는 ‘호모데우스 지향형’의 종교적 신비주의자였으며 윤회설은 반대했다. 종교적이라고 하지만 당시 주류 신앙이었던 다신론적 관습은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추방당하는 신세가 된다. 니체는 크세노파네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신과 인간의 동일성을 지양하고, 이제 신을 다시 자연과 동일하게 놓습니다. 이때 격앙된 윤리적 의식이 그를 인도합니다. 이 의식은 모든 인간적인 것, 존귀하지 않은 것들을 신들에게 접근치 못하게 하고자 힘씁니다.”(340) 신에 대해 의인적 요소를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크세노파네스는 운동경기나 종교적 목적으로 군집한 군중들의 흥분된 열정을 비판한다. 그는 인간의 맹세는 신에 대한 방자함이라고 하여 비판했다. 니체는 삶 전체가 편답(遍踏)인 이러한 크세노파네스를 “비상하게 자유로운 개성”(341)이라고 평가한다. 탈레스의 자연과학적 탐구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은 크세노파네스는 현상세계에 대해서는 “세계의 통일성”(342)을 예감했으며,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無限定者)’에 영향을 받아 두 세계를 전제한다. “여기에 생성과 소멸의 세계가 있고, 저기에 영원히 동일한 정지된 신적인 원소가 있”(342)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통일성에 대한 통찰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이원론적 존재론을 극복하고자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실제로 시도한 자가 그의 제자 파르메니데스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무한정자 개념을 스승 크세노파네스의 ‘신(神)’과 융합하여 이원론을 제거하고자 한다. 유명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의 특징은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그 특징이기도 하다. 가령 윤회론으로 보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을 503년 활동했던 그리스 철학자 심플리키오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여신]는 영혼을 때로는 가시적인 것에서 불가시적인 것 쪽으로,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보낸다.”(344) 이러한 태도는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빛, 능동적인 것, 남성적인 것)와 비존재(어둠, 수동적인 것, 여성적인 것)의 대립을 구분하면서도 연결하는 매개로 ‘여신’을 소환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혼합이 이루어지도록 그녀는 끔찍한 출산과 만물의 혼합을 관장한다.”(346)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모든 사물의 대립이 생존 조건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가 ‘단지 하나인 불’의 무한 변화를 강조한다면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하나’는 인정하지 않으며 대립 요소의 변화만을 말한다. 사랑이나 투쟁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 하나의 ‘놀이’ 현상이며 욕망을 초월한 심미적 세계관 속에서 함께 파악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사랑과 투쟁은 “동일한 신격”(daimon)(347)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의 생성과 소멸을 ‘존재와 비존재’의 대립으로 전환한다. 이를 세계의 원초적 대립으로 보았다. 생성과 소멸의 단순한 변환 과정을 현상적으로 너무도 쉽게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 속에 녹여버리는 태도를 파르메니데스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성과 소멸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로 확정한다. 그리고 이 두 개념에다 신적 영감을 불어넣듯이 각각 강조하여 결코 섞을 수 없는 차원임을 강조한다. 존재와 비존재를 가로지르는 강은 파르메니데스에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존재만 존재하는 것이며 비존재란 애초부터 그 서술어조차 불가능하다. 거론 자체를 할 수 없는 차원을 변화하는 일상의 차원에서 말한다는 것은 파르메니데스에게는 경솔하며 천박한 행위다. 이러한 근원적 불일치, 원천적 차이에 대한 인식 없는 사유는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사이비 철학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더 한 번 물어가야 한다. 단지 논리적인 개념 문제가 아니라 결코 혼합할 수 없는 두 차원의 성질이 분명히 존재한다면, 그 각각의 차원은 또 다른 차원과 대립해야 하지 않는가? 즉 존재와 비존재는 다시 존재의 비존재, 비존재의 존재라는 자기모순에 직면하지 않는가?
이원론의 극복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렇다고 이원론의 극복을 단지 전지전능자 개념에 호소할 수도 없다. 이는 선택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신적 지혜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항상 너무 멀리 있기도 하다.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1:10; 4:6)
<209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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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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