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벼슬을 탐하지 않기
季氏使閔子騫 爲費宰
계씨사민자건위비재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민자건왈선위아사언 여유부아자 즉오필재문상의.
『논어』, 「옹야」의 계속이다. 다음은 그 번역이다.
“계씨가 민자건을 비(땅)의 수령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민자건이 (사자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서 말을 잘해 달라. 만약에 (당신이) 나에게 다시 또 오면 나는 반드시 문수에 있을 것이다.”
계씨는 계손씨로 당대 노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자였다. 비(땅)는 계씨의 읍이었다. 문(汶)은 강의 이름이다. 제나라 남쪽이면서 노나라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민자건은 공자의 제자이다. 계씨가 그를 비(費)의 읍재(마을 수령)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민자건이 그 사자에게 다시 자신을 만나러 오면 자신은 반드시 문수(汶水, 지명)에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은 만일에 사자가 그에게 또다시 와서 비 땅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한다면, 그 자신이 노나라 북쪽이자 제나라 남쪽 지방으로 떠나버리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었다.
민자건은 공자의 10철(十哲)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안연(顏淵),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과 더불어 덕행(德行)에 뛰어난 사람이었다(『논어』, 「선진」). 공자의 제자들 중에 후대 공자학파 안에서 10명의 뛰어난 인물을 선정하여 이들을 10철로 추앙하였는데 덕행 분야에서 4사람, 언어와 정사(政事) 분야에서 각 3사람이 선택되었다. 덕행은 10철 중에서도 단연 인정받기 어려운 공부의 경지였다.
불손하고 불의한 계씨가 민자건과 같은 덕 있는 인물을 자신의 대부로 삼고자 했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 하겠다. 물론 정자가 증언하듯이 대부 자리의 제안을 공자의 문하생 중에서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안연이나 증자 등 소수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씨(謝氏,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음)는 배우는 사람이 안과 밖을 구별하는 정도의 배움만 있어도 세상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데 하물며 공자를 스승으로 삼아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민자건 같은 학자가 불의한 사람에게 귀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함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전제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공부하는 중에 좋은 일자리가 제안되었을 때 도리에 맞는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 직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민자건은 자신의 덕으로 단호하게 계씨의 제안과 그 직책을 단칼에 거절하였다. 계씨의 처사가 도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은 그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좀 더 배우고 합당한 덕을 쌓고 덕을 기르는 데 힘쓰고자 함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민자건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도 덕을 추구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배워나가면서 자신을 신앙의 덕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가야 한다. 반면에 외부로부터 부당하고 불의한 자의 제안이 올 때 이를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불의한 공부, 불의한 사귐, 불의한 자리, 부도덕한 일 등으로부터 아예 멀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악인의 꾀를 좇아서는 안 된다(시 1:1). 악인의 자리에 앉아서도 안 된다. 악인과 함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끊임없이 말씀 안에서 자신을 자라나게 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먹어서 죄에 대항하고 죄를 극복하는 내성을 길러야 한다.
대한의 그리스도인이여! 말씀으로 신앙의 덕을 기르고 마음을 고결하게 간직하며 길러가자. 동시에 악한 사람이나 악한 제안, 또는 사악한 미혹 등을 가까이 하지 말고 거기서 멀어지자.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선은 기르고 악은 제거하면서 바른 신앙의 실천가들이 되어 가자.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고대 그리스 ‘존재론’의 결론:모든 존재의 세계는 모순과 혼돈이다 |
서른다섯. 18-19세기 유럽 기독교의 변화와 변질 1 : 여성운동과 무신론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