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도를 즐기자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그것(도)을 아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도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지지(知之)’는 ‘그것을 안다’는 뜻이다. 윤씨(尹氏)는 ‘지지’를 ‘지유차도(知有此道, 이 도가 있음을 안다)’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지지자는 그 도를 아는 사람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호지(好之)’는 단지 도가 있다는 것만을 아는 수준을 지나서 그 도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아직은 깨달음의 경지로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반면에 ‘낙지(樂之)’는 ‘도를 얻어 그것을 즐기는 것(有所得而樂之也, 유소득이낙지야)’으로 보았다.
장경부(張敬夫)는 도를 오곡(五穀)에 비유하였다. ‘지지’는 ‘그것(오곡)이 먹을 수 있는 것(知其可食者也, 지기가식자야)’임을 아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호지’는 ‘오곡을 먹고서 그것을 좋아하게 된 것(食而嗜之者也, 식이기지자야)’을 말한다. ‘낙지’는 ‘오곡을 늘 좋아하고 배가 부르도록 먹고 즐기는 것(嗜之而飽者也, 기지이포자야)’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사람이 오곡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되 능히 그것을 좋아하지 못한다면 오곡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곡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것을 먹고서 배부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시 오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에게 오곡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을 찾아 늘 먹으며 그 먹는 것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오곡으로 인해 배부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군자가 늘 스스로를 굳세게 하고 쉬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공자는 분명히 자신의 도에 대하여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 배우려고 애쓰고, 배우기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도와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제자들, 또는 그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스승으로서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의 사례를 모범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안다는 것은 적어도 바른 도리나 올바른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알기만 하는 것으로 그치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을 딱딱하게 하고 고집스럽고 원칙적이게 한다. 그래서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유연한 사람이 되기 어렵고, 배움의 과정을 부드럽게 계속해 가기가 어려워진다.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면 그 일을 즐거워하는 단계로 진보해 가야 한다. 알아가고 좋아하는 그 과정 전체를 즐기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즐길 줄 알 때만 그 배움의 과정이 고단하고 힘들고 혹 어려움에 부딪혀 싫증이 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다시 이런 과정들을 즐기면서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이든 기술이든 학문이든 동일하게 먼저는 그 과정의 도가 있음을 알고, 그 앎을 좋아하고, 이러한 과정들의 반복 속에서 마침내 그 분야의 도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이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즐거움의 경지를 터득하고서 그 경험을 말해주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일반화해 주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도를 즐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은 성경이 진리임을 알아야 함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배움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는 단계를 넘어서서 성경을 좋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을 가까이하여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생활 속에서 어느 순간 소망과 보람참, 평안함과 자신감이 마음 안에서 솟아난다면 드디어 즐거움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최고의 즐거움은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자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어느 때이든지, 그 일에 그곳에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그분의 함께하심을 즐겨야 한다. 나 자신이 있는 곳에, 내가 숨 쉴 때에, 내가 일할 때에, 내가 잘 때에 늘 그곳에 그리스도가 함께하신다. 무슨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지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심을 즐기는 것이다.
세상은 악하나 그리스도는 선하시다. 세상은 교활하나 그리스도는 순결하시다. 세상은 요란하나 그리스도는 고요하시다. 세상은 욕망을 불태우나 그리스도는 소박하시다. 세상은 생명을 소멸시키나 그리스도는 생명을 살리신다. 선한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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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마흔 하나. 민중신학과 오순절주의의 대립, 인간중심주의로 퇴락한 기독교 |
니체의 법률 소견:법정 소송보다 중재의 묘를 살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