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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22-06-20 22: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서구 정신문화의 뿌리 : 디오니소스 신화의 광기


추한 것에 대한 욕망, 염세주의, 비극적 신화, 실존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모든 무서운 것, 악한 것, 불가사의한 것, 파괴적인 것, 운명적인 것의 표상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엄격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비극 예술을 만들어낸 저 광기, 즉 디오니소스적 광기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1)

니체의 전반적 사상은 바젤대학교 문헌학 교수로 재직 중 출간한 처녀작 『비극의 탄생』(1872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 사상 곧 서양 사상과 문화의 뿌리를 철학적으로 재규정하려는 시도가 니체 처녀작의 동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대 그리스 사상에 대한 니체의 관심은 당대 독일 정신의 본질과 연관 짓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니체는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역사를 19세기 독일 사상과 문화에도 연결시키면서 그 매개자로서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를 지목했다. 그 저서 초판 출간 시기에 쇼펜하우어를 통해 지식이 아닌 “예술이 삶의 최고의 과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28)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삶의 근본과 목적을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니체는 진정한 형이상학이란 ‘지금-여기-이러한’ 방식의 삶을 최고와 최선으로 여기고 이 “실존의 진지함”(28)에 더 몰두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학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론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실존을 최고선으로 수용하려는 니체에게 서구의 근대성, 곧 지적 이성의 합리적 판단은 삶의 축소와 왜곡, 분할과 배척을 야기하는 부정적 요인이다. 비합리적 모순과 대립, 갈등과 투쟁이 격렬한 반향을 일으키고 질서와 무질서가 얽히고설킨 비극적 삶의 필연성을 ‘악’으로 몰거나 합리적으로 통제 가능한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니체에게는 실존에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이다. 그래서 니체는 현실을 고대 그리스 시대의 방식으로 구제하기 위해 ‘비극=실존=예술’이라는 등식을 서둘러(?)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예술은 곧 비극(悲劇)이며 이 비극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는 실존이었다. 물론 이 실존은 선과 악, 행과 불행, 이익과 손해 등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탈이분적 가치의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예술을 통해 니체는 자기 시대의 현존을 그 자체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니체는 이러한 의도를 먼저 염세주의(厭世主義, Pessimismus) 극복을 시도함으로써 시작한다. 삶의 비극을 지배하는 공포, 사악, 가혹, 절망 등은 실존의 근본 정황들이며 이는 삶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낸다. 절망적 요소들을 자기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필연적 요건으로 삼기 위해 니체는 문헌학자로서 자신의 천재적 기지(奇智)를 발휘,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니체의 그 확신은 다음과 같은 수사학에 잘 나타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용기 있는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적 신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10) 비극적 신화 앞에 그리스인들에 대한 긴 수식어는 이미 비극을 비극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충분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삶=예술’의 일치가 가능한 것으로 보려는 가공된 그리스 신화를 니체는 “그리스적 명랑성”(10)이라고 평가한다.
이 허구적 신화에서 니체는 그리스적 명랑성을 지배하는 두 원리에 주목한다. ‘아폴론 신화’와 ‘디오니소스 신화’가 분리 불가의 두 원리다. 디오니소스적이면서도 동시에 아폴론적인 신화가 그대로 구현된 시대가 고대 그리스 ‘아티카 비극 시대’다. 디오니소스는 주신(酒神)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술 취함 곧 ‘도취’를 상징하며, 준수한 외모로 묘사되는 아폴론은 외형의 완벽함을 구현하려는 조형 예술가들에게 “꿈속에서 초인적 존재의 매혹적인 신체 구조”(30)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현존의 삶을 긍정하는 방식의 두 기원을 추적한 니체는 이질적 본성의 조화(?)를 통해 삶의 비극을 구가(謳歌)했던 기원전 6세기경 아티카 시대의 비극 작품을 주목한다.
이렇게 인간 존재의 예술가적 정당화를 기획하는 니체에게 몰아적 도취와 우주적 질서에 대한 형상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가령 니체가 “꿈의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은 (……) 모든 조형 예술의 전제 조건이다”(30)라고 할 때 그는 언어와 비언어, 질서와 무질서, 선과 악의 피안을 고려한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고대 그리스 세계에 대해 삶의 긍정과 생기발랄함을 말하는 것은 서구 문화의 본질에 대한 커다란 왜곡을 초래한다. 최고의 삶일수록 최고의 허구가 되는 허무주의의 논리를 니체는 초기부터 그의 작품에 적용하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꿈 현실이 전개되는 최고의 삶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가상이라고 어렴풋이 느낀다.”(30-31) 슬픔, 암담, 참담, 불안, 공포 등 니체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고대 그리스 비극은 자기 삶의 긍정을 위해 총체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삶의 ‘신적인 희극’ 전체가 지옥과 함께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31) 생생함과 발랄함을 고대 그리스 비극 시대는 충분히 고려했다고 본다.
니체가 보았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활력은 단지 외적 삶의 형식이나 양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추진력이 삶을 뒷받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조형예술을 지배하는 아폴론 신화의 이런 면을 주목한다. 아폴론은 “내면적 환상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 그리고 “보다 높은 진리와 완전성”, “자연에 관한 심오한 의식” 나아가 “예언하는 능력의 상징적 유사물”로서 “삶을 가능하게 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예술 일반에 대한 상징적 유사물”(32)이었다. 내면세계, 자연에 대한 분명한 의식, 진리에 대한 확신을 삶의 가치를 위해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니체는 아폴론 신화를 성경을 주석하듯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현실의 정당화 요건을 루터교의 엄격한 율법주의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찾을 수 없었던 니체는 위와 같이 그리스 고대 신화에서 찾고 있다. 인간 본성과 자연 만물에 나타난 창조주와 심판주 하나님의 존재 계시의 확실한 근거를 성경 자체로부터 명확하게 찾을 수 없었다. 성경 자체의 절대진리를 확정하지 못할 때 지성의 고뇌와 아픔, 실존에 대한 슬픔과 절망은 성경적인 바른 신학 정립이 아닌 자기만의 신화 창조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니체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더 살펴보면서 성경진리의 절대가치로 돌아가야 하는 그 필연적 이유를 앞으로 고민해보려고 한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3-4); 6 네가 (……)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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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니체전집 2(KGW III 1),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14-15쪽. 강조는 필자에 의함. 이하 쪽수는 괄호 처리.


<227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군자는 어리석지 않다
모난 것은 모가 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