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마흔넷. 21세기 기독교의 변질: ‘정치 권력적’ 보수화
오늘날 전 세계에 기독교와 다른 주요 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성난 보수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 즉 문화적 변화를 통해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 주도권을 가졌던 남성들(heterosexual men)이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는 위협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그들의 자존심과 주도권, 심지어 그 존재 위치마저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앞의 인용은 영국 기독교 역사가 맥클로흐의 기독교를 포함한 현대 주류 종교 전반에 대한 21세기 시대 진단을 담고 있다. 성난 보수주의, 남성중심주의의 붕괴, 기득권의 자존심과 주도권 붕괴의 두려움이 그 핵심 개념이다. 종교적 진리 자체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종교적 특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종교를 빙자해 전 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난 시기가 21세기라고도 할 수 있다. 특정한 세력들이 이념과 사상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꾀하려는 운동 논리를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Ideologie)’라고 한다면, 보수주의의 분노라는 말은 특정 이익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사용했던 수단인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된 급박한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이 된다.
이러한 기득권의 대명사인 남성중심주의 종교 문화로 지칭되는 보수주의 자체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 능력의 한계에 대한 반성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더 강한 권력 확대를 꾀하는 단계로 향한다는 것이 세상 역사의 일반적 교훈이다. 이러한 21세기 종교 현상에서 우리는 남성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서구의 기독교 문화가 (성경권위에 호소한 문화가 아니라) 종교적 이념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세속의 정치권력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절대진리의 부흥이 얼마나 절실한지 더 깊이 고민하고,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향하게 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21세기 역사 섭리에 다시 주목하고자 한다. 기독교 진리를 정치 권력화하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거짓 보수주의의 득세 상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절대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 참조) 위에 든든히 서 있음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간구하면서.
앞의 맥클로흐의 지적을 따라간다면,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 현재로 이어지는 기독교 문화는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종교적 주도권을 가졌던 남성 중심의 토대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변화의 관점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를 바라보는 종교사회학자들은 “세계 종교들 가운데 (……) 가장 극단적 보수주의 세력”(422)의 확산이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의 죽음’을 말한 니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0세기 말이 21세기에 물려준 유산은 절대적 가치로 추앙받았던 것들의 무가치화며 미래 목적의 불가능성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 후 혼돈의 독일 사회에 출몰한 히틀러의 나치당처럼, 절대진리를 조작하는 왜곡된 보수주의 세력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필연성에 가깝다.
1977년 미국 남침례교인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가 제39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복음주의자의 복귀’로 환호했다. 하지만 그의 기독교 정체성은 복음주의 계열이 아니라 성경의 절대권위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자 진영이었으며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며 기독교의 범세계적 일치 운동을 주도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에 공감하는 자였다. 기독교인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리라 예상했던 미국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기대는 이내 무너졌다. 이 현상에서 보듯이 미국 기독교인들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지미 카터의 신앙이나 신학의 깊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독교 정치인이 당선되면 자신들의 권익(權益)을 챙기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빠져 투표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기독교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자 계산하고 행동하는 거짓된 보수주의의 전형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절대진리를 전수하겠다는 주장을 말로는 하지만 그것도 자신들이 이미 계획해 놓은 이해관계에 맞지 않으면 뒷전으로 밀린다. 카터 행정부가 ‘종교적 사립학교’에 대한 면세 혜택을 철회한다는 정책 결정을 내리자 선거전 지지는 더 큰 분노로 바뀌었다. 나아가 공립학교의 기도 폐지, 낙태의 합법화, 동성애에 대한 관용 입장은 기독교 지지자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했으며 지지율 급감 상태로 결국 그는 물러났다.(423 참조)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종교적 확신을 대중적 인기몰이의 수단으로 삼았던 대표적 사례다. 물론 지미 카터는 실패한 전략을 구사했지만, 지미 카터 이후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gan, 1911-2004)은 할리우드 출신의 ‘모호한 종교적 관점을 가진 사회적 자유론자(libertarian)’(424)였지만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복음주의연합’을 적절하게 자신의 권력유지에 이용했다. 그런데 복음주의연합이 레이건과 함께 이스라엘을 옹호하면서 중동에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던 교인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떠돌이 신세를 묵인하게 된다. 복음주의연합 운동을 주도한 자들이 이스라엘을 옹호했던 것은 그들의 세대주의 종말론의 관심 때문이었다.(425 참조) 예루살렘에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까지 정하고 그 종말의 완성이 바로 예루살렘의 복음화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시한부 종말론에 담긴 자신들의 종교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레이건 행정부와 정치적으로 동거하게 되었다. 물론 레이건 정부도 이스라엘 정책에서 이들의 강한 지지에 뒷받침을 받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세속의 국가 권력과 기독교 종파의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지면서 교회의 유일한 절대표지인 ‘성경 자체의 권위’는 점점 관심에서 멀어진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살았고 운동력 있는 건전한 말씀의 권위가 사라지면 기독교는 자신들이 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세속 국가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거나 아니면 공생을 위한 공조(共助) 관계가 된다. 성경 진리에 바탕을 둔 건전한 진리에 바탕을 두면 국가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것이지 국가 권력을 이용하고자 하지는 않는 것이 정상이다. 세속의 국가 권력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회가 세속화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방증이다. 어떤 정부가 수립될지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후원, 적극적 참여 내지 배척 등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가 취할 근본 태도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절대진리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 때 사회적 집단으로서 기독교는 신을 숭배하듯이 특정 권력을 절대화하고 신격화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타인에 대한 증오와 배척으로 이어지고 이를 과격하게 실행하기 위해 국가의 무력(武力)에도 호소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서 맥클로흐는 “기독교는 평화와 함께 검도 불러올 수 있다”(448)고 진단한다. 중요한 것은 평화든 검이든 하나님의 역사 섭리에는 극단적인 방법들이 엄격하게 당혹스럽게 또한 참담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로 하나님의 교회 섭리는 피조물과 머리와 가슴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매우 많다. 세속의 현실 권력이 던지는 위협이나 유혹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생명의 말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228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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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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