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스 신화의 부활
비극은 음악의 보편적인 효력과 디오니소스적 감수성을 가진 청중 사이에 고상한 비유, 즉 신화를 세워, 청중에게 마치 음악이 신화의 조형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최고의 묘사 수단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니체전집 2(KGW III 1),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155. 이하 쪽수는 괄호 처리.
니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음악의 효력을 통해 신화가 삶을 지배하도록 했다는 사건에 주목한다. 신화 중에서 디오니소스 잡신 숭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음악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허구가 그 잡신 신화이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음악은 이성과 논리와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며 신체의 생명과 기운을 향상하는 정신력의 도구다. 인간의 몸은 이성이 아닌 감성, 철학적 논증이 아닌 예술적 리듬을 만날 때 본래의 기운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마치 흙덩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듯이 잡신 디오니소스에게 음악 정신을 불어넣어 신체의 생명력을 복원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의 이성 중심의 낙관주의나 기독교의 도덕적 율법은 신체의 생명력과 기운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사악한 장치로 본 니체는 그 대안을 고대 그리스의 잡신 디오니소스 신화와 이 신화에 운동력을 제공한 그 시대 음악 정신에서 찾고 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율법과 종교적 규율과 의식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니체는 고등학교 시절 고대 그리스 신화를 접하고 당시 성경의 고등비평이 보편화한 독일 신학을 경험하면서 기독교 교리가 억측이며 허구이고 조작이라고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일 개신교의 뿌리가 오히려 디오니소스 신화에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녔던 음악 정신과 그 정신을 구현한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독일 민족에게 재현되었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이다.
우리의 모든 희망은 (……) 이 불안하게 위아래로 경련하듯 움직이는 문화 생활과 교양의 발작 아래에 내적으로 건강하고 멋진 태고의 힘이 숨겨져 있으며, 그것은 중요한 순간에 한번 힘차게 요동치다가 다시 미래에 깨어나기를 꿈꾼다는 점을 인식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뻗어간다. 이 심연으로부터 독일의 종교개혁이 자라나왔다. 개혁의 합창 속에서 독일 음악의 미래 양식이 가장 먼저 울려 퍼졌다. 루터의 합창은 깊고 용감하고 너무나 훌륭하고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무성하게 자란 덤불로부터 봄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솟아오른 최초의 디오니소스적 유혹의 소리다.(168-169. 강조는 필자에 의함)
니체에게 독일의 종교개혁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부활 사건이다. 그리고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를 비롯해 이후 발전한 독일의 뛰어난 기독교 음악들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잡신 숭배와 찬양의 부활이다. 고대 음악 정신을 최초로 구현한 사건이 독일의 종교개혁이므로 독일 교회의 역사는 숨어있던 디오니소스 신화의 전개 역사가 된다. 즉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가 비극 공연으로 재현되었던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독일의 종교개혁을 바르게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과 독일 기독교 음악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언어 논리와 합리적 추론, 확고 불변의 진리와 진리 인식의 낙관론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니체는 독일의 모든 지적 교양과 예술 문화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신화의 틀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의 근본에는 반기독교 정서가 지배한다. 가령 “실존과 세계는 오직 하나의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되어 나타난다. (……) 세계와 나란히 세워진 음악만이 미적 현상으로서의 세계의 정당화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에 관한 개념을 제공할 수 있다”(175)고 말할 때, 니체에게 도덕적 선악 이분법을 토대로 만든 기독교 교리는 인간 실존과 세계를 억압하고 황폐화하는 악법이다.
그가 초기 철학에서 특히 강조하는 ‘세계와 나란히 세워진 음악만이 미적 현상인 세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세계는 이론적 지식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론적 지식이나 언어적 판단으로 세계를 거론할 수 없기 때문에 음악 정신에서 세계 접근의 통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전체’ 그 자체로 이해한다면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명제는 가장 큰 날조이며 허구가 된다. 니체가 볼 때 독일의 종교개혁 사건 다음에 훌륭한 음악 작품들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독일의 예술과 지적 교양은 생기가 빠진 ‘타락한’(?) 저급 문화로 흘렀을 것이다. 논리적 언어의 낙천적 사고를 엄단하는 디오니소스 충동에 바탕을 둔 독일 음악이었으므로 생기발랄한 문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니체는 자기 사고의 태생인 기독교 사상과 문화를 초기부터 철저하게 지워나간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었다’는 선언에 도달한다. 니체는 이러한 자신의 사유 과정을 독일 정신역사와 일치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디오니소스적 현상은 우리에게 항상 새롭게 반복되는 개체 세계의 유희적 건설과 파괴를 근원적 쾌락의 분출로서 드러낸다. (……) ‘가장 나쁜 세계’의 실존조차도 정당화[하는-필자 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 현상의 세계 전체를 소생케 하는 영원하고 근원적인 예술의 힘으로 나타난다.(175-176, 178)
이렇게 니체에 의해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신화의 제물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 신화는 마침내 하나님을 죽인다. 우리는 다시 성경을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지 못하면 신학은 신화의 희생제물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성경의 신화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근본에서 부정하는 신화는 ‘망령되고 허탄한(딤전 4:7)’ 것이며 ‘공교히 만든 허탄한 이야기(벧후 1:16; 딤후 4:4; 딛 1:14)’다. 신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반하는(딛 1:14) 허구이며 조작이다. 디오니소스 잡신 숭배는 오직 영원한 영생이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진리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적 통치 역사를 찬양하는 길에서는 벗어난 니체는 성경으로 시작했지만 신화로 마치는 경우가 되었다.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9:15-17)
<245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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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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