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하이데거의 로고스에 내려진 심판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現存在, Dasein)라고 규정한다. 독일어 그대로 번역하면 ‘거기 있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상과 관련짓는다면 ‘지금여기이(/그/저)’렇게 있는 존재다. 그런데 하이데거에게 특이한 것은 이러한 현존재만이 (신적 존재와 같은) 궁극적 존재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존재 의미’가 현재 담겨있다는 사실이 ‘지금여기이(/그/저)’렇게 존재하고 있는 현존재의 근거가 된다.
‘지금여기이(/그/저)렇게’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을 초월한 신과 같은 존재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재방식을 통해서만 확인되고 체험될 뿐이다. 그런데 현존재의 존재방식 가운데 특히 주목할 점이 바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현존재를 현존재로서 살아가게 하는 근거가 바로 ‘말’(die Rede)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말’을 ‘언어’(die Sprache)와 구분한다. 하이데거의 ‘말’은 우리가 입으로 하는 구체적인 발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발언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이유(가능조건)라고 할 수 있다. 근원적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인 말에는 언제나 궁극적 존재(진리)가 담겨 있으며, 현존재는 각각의 경우마다 항상 궁극적 존재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의미가 되도록 한다(해석). 그리고 존재 의미와 관련된 개념들을 분류해서 참인 명제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존재와 관련된 모든 언어적 활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바로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시간개념의 역사를 위한 서설(365)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여기이(/그/저)’렇게 존재하는 현존재를 통해서 궁극적 존재가 다가와 만나고 있으며 그 만나고 있는 방식이 ‘말’이다. 그래서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유지되었던 창세전부터 있는 초월적인 영원한 말씀(logos)과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여기이(/그/저)’렇게 존재하는 현존재에 담겨진 말은 궁극적 존재를 언제나 이미 이해하면서 내면에서 교감하는 구조를 갖는다. 인간 현존재가 가지고 있는 ‘말’의 구조 바깥에서 또 다른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제나 현존재가 존립하도록 이끌어주는 말의 본래적 구조 속에 들어와 있음을 뜻한다.
존재와 말 그리고 언어의 관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존재는 신과 같은 궁극적 존재다. 그런데 이 존재는 초월적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존재를 내면적으로 항상 이미 경험하는 장소와 그 구체적인 당사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마다 ‘지금여기이(/그/저)’렇게 실존하는 현존재인 인간이다. 이 현존재를 이해함은 동시에 신과 같은 궁극적 존재를 이해한다는 말이 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제까지 신에 관한 모든 언급들은 바로 인간 내면의 울림이었지 초월적 경험이 아니었다.
이렇게 위대한 대상이 바로 현존재 혹은 실존인 인간이다. 이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존재의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며, 그 드러나는 통로가 바로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말이란 ‘언어의 실존론적이며 존재론적 바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언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존재와 이미 소통하고 있는 말이다. 이 경우에 ‘말’의 구조는 현존재의 실존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원천이 된다.
그리고 언어란 궁극적 존재와 더불어 이미 항상 말하면서 그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현존재가, 자신이 속한 세계 속으로 존재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존재의미를 분류해서 명제로 나타내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현존재 속에 궁극적 진리인 존재가 항상 이미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궁극적 진리가 바로 인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에게 초월적 존재로서 신과 같은 존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쓸모가 없어졌다. 니체 이후 하이데거에 와서 서양 전통의 신은 다시 한번 확인 사살된다. 현존재를 궁극적 존재(진리)의 담지자라고 강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 말씀(logos)은 제일 먼저 버려야할 쓰레기가 된다.
이러한 오만과 사색의 광기에 내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 선포만이 더 선명해질 뿐이다.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2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말이 없으며 그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시19:1~4/바른성경)
<다음 호에는 하이데거의 로고스와 서양언어에 내려진 심판를 다루고자 합니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언어로 만들어어진 가장 큰 속임수: 존재 |
‘존재’의 현현(顯現)이라는 ‘현존재’의 허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