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0-12-04 13: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철학적 로고스의 역사: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


실존철학자로 잘 알려진 하이데거는(1889~1976) 언어철학자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을 다루는 분야가 언어철학이라고 한다면, ‘지금여기이렇게’ 존재하는 현존재(現存在)의 본질을 언어문제로 보는 하이데거는 언어철학자의 명성을 얻기에 부족하지 않다. 언어의 중요성은 간단히 말해 인간에게 ‘진리’를 보여주는 최고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존재로서 인간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기 판단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실성 때문이다. 확실성은 사실에 대한 참됨 곧 진리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진리에 대한 확실성을 ‘거짓’이 될 수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 취급한다. 진리와 거짓은 상반된 평가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문제를 󰡔논리학󰡕 1부 13~14절에서 다룬다.

  하이데거의 표현으로 보면 언어와 관련된 진리는 ‘로고스’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로고스는 ‘참’인 진리를 뜻한다. 그런데 그는 로고스가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며, 그 구조 속에 ‘거짓’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한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구조로서 로고스는 참과 거짓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며, 거짓은 참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 조건이 된다. 이렇게 되면 변하지 하는 절대적인 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이란 것은 단지 일순간 그렇게 발견된 채로 드러난 것일 뿐이며, 거짓이란 잠시 가려져 있거나 잘못 놓여 상태로서 다시 발견되어 참이 되기 위해 준비되는 과정이다. 이 숨겨진 거짓이 참인 진리를 보내줘야 진리가 드러날 수 있다.   

  이제까지 서양 철학과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진리라고 불렸던 ‘로고스’는 영원불변의 진리 구조가 아니라, 단지 의식 현상에서 나타나는 발견함과 가려짐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래서 진리의 대상인 궁극적 존재에 대한 규정도 말 그대로 단지 언어 현상 중 논리적인 한 차원에 불과하다. 그렇게 때문에 이제까지 초월적인 존재의 절대진리의 구조를 밝혀보겠다고 했던 노력들은,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변의 “존재자의 존재론이 아니라, 존재자의 한 논리학”적 탐구에 불과했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진 수없이 많은 진리의 역작(力作)들이란 우리를 초월해 있는 진리에 대한 탐색과 논증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드러남과 숨겨짐의 반복 과정이었을 뿐이다. 진리가 있다면 인간 속에 있는 내재적 진리밖에 없으며, 이것이 아니라면 진리란 끊임없는 언어적 허구 창조의 연속일 뿐이다.     

  한편으로 보면 날조되고 가공된 허구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열망 내지 기대인 것이 인간중심적 로고스의 구조다. 로고스가 허구의 한 단면인지 참인지는 미미한 차이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허구와 로고스는 투명한 동전의 양면이다. 

  참인 명제로 드러난 것은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뜻한다. 이때 참인 것으로 파악된 대상은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참인 것으로 납득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즉 어떤 대상을 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와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동일성에 관한 의지가 내면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인 것으로 파악하기 전에 이미 애초에 그 대상은 그 대상 자체로서 동일한 것이다. 예를 들면 신의 존재를 영원불변의 대상으로 믿는다고 할 때, 불변의 대상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동일한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성의 부산물이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입장을 따라가 보면 로고스라고 칭했던 것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초월적 의미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인간 본성과 의지에서 출발해 인간 언어의 작용에 의한 드러남과 숨겨짐의 반복 과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런데 하이데거의 지적에 따르면, 동일한 것에 대한 의욕의 산물인 ‘로고스’를 진리 자체로 착각하고, 나아가 궁극적 존재가 분명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확정한 것이 논리학 역사에 나타난 최고의 문제점이다. 신과 같은 궁극적 존재는 언어적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고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착각했다. 착각이 커지는 과정을 마치 진리를 확증하는 과정으로 오해한 것이다. 

  진리 탐구와 관련된 언어의 본성에서 드러나는 것은 초월적 진리가 있어야할 이유와 필요성 그리고 그 여지가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궁극적 존재에 대한 물음은 전적으로 이 물음이 던져진 인간 내면에서 해소된다. 초월적 진리를 운운하거나 그 확신이 커지면 커질수록 허구와 조작과 날조의 정도만 심해질 뿐이다. 신과 같은 궁극적 존재가 있고, 영원한 진리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현존재로부터만 가능하다. 언어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진리를 말하고 궁극적 존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 이러한 존재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성경의 경고는 하이데거를 비롯해 우리에게 벌어지는 언어적 사건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사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의식(意識)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의 논리학
명제적 진리의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