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진리의 시간성이라는 아이러니
일반적으로 진리란 불변적 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절대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현대인들도 ‘진리’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사실관계와 변함없는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은 시간적 특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경험이라는 사건은 언제나 경험자의 ‘그때 그순간’이라는 특정한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는 반드시 ‘시간의’ 진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간성에 보호(?)를 받고 있는 진리의 특성을 망각한 결과가 ‘불변의 진리’라는 말이 된다. 이러한 발상들이 니체의 ‘신 죽음’ 선언 이후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현대사상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간은 각자 자기 삶에 유익한 가치 판단을 내리고 산다. 진리와 거짓,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유익과 손해 등 모든 순간들이 가치판단을 내리는 시간이다. 물론 자기를 중심에 놓고 내리는 결정들이다. 가치 판단이란 간단히 말해 문장으로 드러나는 생각과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문장은 가치판단을 내리는 자에게 진리가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즉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 말은 곧 ‘그때 그순간’의 판단이 어떤 사람을 가치롭게 만든다는 말도 된다. 분명한 것은 문장으로 드러난 진리이든 거짓이든 모든 가치판단은 어떤 특정한 ‘시각(時刻)’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 특히 진리라는 가치가 현현(顯顯)한다는 것은 ‘그때 그순간’이라는 시각(時刻)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는 언제나 ‘지금여기이렇게’라는 현재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정 시각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 진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이데거 철학에 의존하는 자들에게 시간의 문제는 궁극적 존재나 진리라는 개념보다 우선 탐구해야하는 문제가 된다. 진리에 대한 판단을 운운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이 시간(時間) 혹은 시각(時刻)이라는 문제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시간적(zeitig)’이란 개념보다는 ‘시각적(時刻的, temporale)’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시각은 어떤 특정한 시점을 말하며, 시간은 시각과 시각의 거리 내지 사이를 뜻한다. 분명 다른 상황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시간적이란 말은 어떤 현상의 운동이나 과정과 연관된다. 하지만 시각성(Temporalitaet)은 어떤 현상이 시간의 흐름에 속하기 전에 그 본래의 특성을 이미 부여받았다는 가정(假定)과 관련된다. 즉 어떤 현상을 ‘변화와 흐름 이전의 차원’과 관련짓게 한다. 진리라는 가치판단이 만들어지는 근본 조건에 대한 문제다.
이렇게 보면 시각(時刻)의 성질은 진리를 판단할 때 대상을 받아들이는 경험적 감각(感覺)과 받아들인 자료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지성(知性)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시각의 관점에서 보면 감각과 지성은 특정한 시점을 만드는 도구와 절차에 불과하다. 경험적 감각의 자료들은 특정 시각(時刻)이 요구하는 정도만큼 지성의 내용을 형성하고, 지성은 특정 시간이 보내준 자료만큼 가치 판단 즉 진리를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가치판단으로서 진리란 ‘현재 시각’의 특정 관점에 불과하다. 진리의 정확성이 더욱더 분명해진다는 말은 그 진리가 극히 제한된 하나의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점증시킨다. 진리가 시간과 연관된 문제라는 말은 평범하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갖가지 가치 판단 즉 삶의 의미부여 활동 자체를 근원에서부터 문제 삼는 발언이다. 특히 영원자존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시간을 초월한 절대적 가치를 신앙으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특정 시각(時刻)에 종속된 자기 편견에 불과한 것을 마치 불변의 가치인양 착각하면서 평생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이데거식의 시간적 제한성의 가치판단이라는 말에는 영원한 존재인 신이나 시간 이전 혹은 초시간적 계시 진리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들어있다. 더 분명히 말하면 영원자존자인 여호와 하나님이란 개념은 ‘그때 그순간’의 절실한 필요성에 따라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한낱 관념에 불과하다. 모든 진리판단이나 가치들이 특정 시각(時刻)이라는 근본적인 제약 가운데 있다면, 영원한 존재도 불변의 진리도 있을 수 없다. 근본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상황, 이것이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현대철학에 내려진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다.
전1:12~14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13 내가 마음을 쏟고 지혜를 다하여 하늘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탐구하고 살펴보니,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어 수고하게 하신 괴로운 짐이다.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보니, 그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다음 호에는 ‘시간성과 무시간성 사이의 혼동’을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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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시간적 존재에 내려진 저주 |
神的 가치추구에 드리운 ‘신의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