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07-20 19: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 딜러의 종말을 향해


우리는 1912년 4월의 어느 날 북대서양에서 일어났던 대재앙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무선교신의 역사에서 이 사건은 중대한 일을 하나 발생시켰다.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던 조난자가 날린 신호 덕분에 3일 동안 교신이 이어졌으며 미국은 이 덕분에 조난사고를 추적할 수 있었다.? 프랑크 하르트만, 『미디어철학』, 이상엽 외, 서울: 북코리아, 2008, 229∼230쪽 참조 이것은 무선 미디어를 통해 최초로 조난사고를 추적한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사례다. 그 이후 십여 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21년 파리 에펠탑에서는 유럽 전역에 라디오 방송을 정규적으로 송신한다. 침몰하던 여객선에서 무선 신호를 보낸 한 세기 후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정보가 우리의 심장과 영혼을 얼어붙게 하는 ‘재앙의 미디어 시대’를 살아간다.
인간은 미디어를 편리하게 마음껏 사용하는 주인이 결코 아니다. 거대한 미디어 왕국에서 유통기한이 정해진 부속품이다. 세계 곳곳으로 무차별적으로 팔려나가는 나의 정보들을 보면 마치 사지가 능지처참 되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하루가 멀다고 국내외 곳곳에서 날아오는 수십 통의 알 수 없는 스팸 메일과 이동전화 광고 메시지 혹은 벨 소리는 더 이상 유지할 나의 고유성은 없으므로 더 이상 그런 것은 찾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지식정보의 권위와 고유성 특히 텍스트의 고유한 권한을 말할 때 서양의 기독교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의식한다. 서양의 현대 미디어 철학자들은 문자로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다는 점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성경이 충족스럽고 통일성을 갖춘 불변의 진리체계일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500여 년 전 유럽 사회에 ‘종교개혁’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던 루터의 성경 번역은 ‘성경은 그 자체 신의 능력으로만 해석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즉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능력을 찬양하며,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과 장차 재림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의 독자적 특성은 진리 내용과 진리 주관자 그리고 진리 수납자가 분명하다. 텍스트 자체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주관하는 자는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수용자인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인식과정과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어떠한 능력도 필요치 않다. 그래서 성경은 저자가 동시에 진리를 주관하는 독특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진리 중개업자(intermediary)를 따로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떠한 유능한 성경교사라고 하더라도 결코 진리 주관자의 지위가 될 수는 없다. 진리 전달의 숭고한 사명을 온몸을 불태우며 다했다고 하더라도 진리 자체의 구성과 판단에는 관여할 수 없다. 성경의 이러한 인식 주관자의 독특한 특성은 루터의 성경 번역에 의한 유럽 기독교의 개혁 원리를 미디어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미디어가 모든 것을 조작하는 현대 사회에서 객관적 진리를 이해하고 지켜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성경 원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를 주관하지 않으면 어떠한 올바른 진리 인식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나아가 성령 하나님의 통치는 그야말로 그분의 절대주권에 달려있음으로 우리의 요청이나 요구와는 전혀 무관하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민감하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물질적 신체 정보 모두를 미디어 체계 속에 함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귀한 판단과 생각을 상호 주고받는 수단이 미디어라고 여기지만 실상 우리는 정보 그물망에 붙잡힌 먹잇감처럼 미디어 시스템의 소모품이 되기가 일쑤다.
나에 관한 모든 정보가 나도 모르는 곳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유통된다. 내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은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일 수 있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부터 나의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자일 수 있다. ‘고객님의 소중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는 말은 ‘너의 모든 정보는 이미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며 원하는 만큼 잘 사용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필요하면 마음껏 조작하고 왜곡하여 유포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들이 소중한 내 정보를 나의 가치를 위해 보호하거나 귀하게 다루어 줄 리는 만무하다.
현대의 첨단 미디어 사회에서 내가 아는 나에 관한 모든 정보마저도 그 진실성을 헤아리기 어렵다. 녹취록의 본인 음성도 첨단 장비를 동원해 음파까지 분석해 보더라도 자기 목소리인 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시대에 산다. 사실과  진실에 호소한다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 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와서 왜 여기에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수감 중인 바울 사도를 통해 에베소 교인들에게 생의 비밀이 복음으로 전달된다. 할렐루야!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시다. 4 그분께서 창세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5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아들로 받아들였으니, 6 이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엡 1:3~6/바른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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