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08-11 19: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진리 전도자로만 죽든 살든!


대중 미디어는 빠른 시간에 대중이 향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강요한다. 만든다는 말은 미디어에 의해 대중들이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감각적 흥분과 만족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한 문화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십에서 수백의 케이블 채널,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수십만 혹은 수백만 블로그는 어떤 불변의 가치, 실체적 진실도 진리도 결코 없다는 것, 아니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강변하는 조작꾼들의 광기를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거짓 만족과 행복을 부추기는 ‘본래부터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벧후 2:12) 짐승들의 못된 화적질일 뿐이다.
현대 사회에 유통하는 정보들이 실체적 진리를 가리도록 조작된 생산물이라면, 이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사악한 딜러일 뿐이다. 이러한 패거리들에게 불변의 진리를 위해 자기 수고와 희생을 감수한 진리 전도는 가장 짜증  나는 무익한 설교이며 진리의 말씀은 돈벌이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는 별 소용이 없을 밖에! 인간이 자신의 이상과 목적 실현을 위해 취득한 물질과 정신의 결과가 문화(文化, culture)라면, 그 문화의 종류인 학문과 예술, 도덕과 종교는 우리 시대에 어느 것 하나라도 진정성 있는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고뇌와 고민, 그리고 큰 비용을 지불하고 순수하게 그 자체의 가치를 탐구하게 하는 동인(動因)은 더 이상 아니다. 그러한 동기와 계기를 고려하는 시간들을 첨단 기기(器機)와 미디어, 그리고 그 딜러들이 탈취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조작된 내용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 대중들은 그것에 너무나 빠지고 싶어한다. 첨단 미디어를 통한 허구의 조작물은 너무나 잘 팔려나간다. 축구 중계가 인류 수십억을 일순간 단합시키고 맥주와 튀긴 닭고기를 함께 먹는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인류의 동질성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문화’라고 짖어댄다. 이른바 보편적 문화적 코드라는 허상이 지구촌 문화를 유치하게 만들고 있다.
기독교의 행태도 동일하다. 성경의 진리를 통해 진지한 고민과 신앙으로 안내하기보다 몇 마디 억측의 속임수를 만들어 서로서로 듣기 좋은 말을 주고받는다. 더 사악한 짓은 절박하게 살아가며 애절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자 하는 성도들만 골라서 사냥하는 자들의 악행이다.
현대 첨단 미디어가 조작하여 만들어내는 정보의 특징은 속임수가 결코 속임수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는 데 있다. 종전 문자 중심의 진리는 참과 거짓이 비교적 분명한 명제로 드러났다. 하지만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현대의 텍스트들은 참과 거짓의 분별에 대해 관심을 꺼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분위기는 책을 통해 밝혀진 그리고 밝히려는 문자 중심의 진리 논증의 독자성이 사라졌다는 명백한 시대적 징후다.
진리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문자로 정렬한 텍스트는 사상과 이념을 드러내야 하며 그것도 근거에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구성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마저 번거롭게 여기고 대량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살포하는 다양한 미디어들의 광란이 문자 텍스트의 고상함을 초토화한다. 오히려 문자 텍스트의 편협함과 갑갑함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선전한다.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진리추구의 원칙과 방법을 근원에서부터 파괴하여 거짓과 허구의 날조를 무방비 상태로 몰아간다. 원저자의 고민에 공감하고자 시도하는 진지한 텍스트 해석 행위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대인, 특히 10대들의 독서 능력 저하는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쓰기 능력은 물어볼 것도 없으며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 중고등 학생들도 책 읽기를 시켜보면 답답하다 못해 무거운 책임감에 무책임한 선배의 자괴감마저 든다. 교육시킨다고 들어부었던 투자의 결과가 독서능력마저 의심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심각한 병적 증세라는 것을 감추고 있는 매체가 있다. 바로 현대의 첨단 미디어 장비들과 그것을 사리사욕을 위해 대량 살포하는 장사꾼들이다. 그들은 당연히 책을 읽으며 진지하고 사색하고 담화를 나누고 진정한 의미를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한 시간을 빼앗아야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책 표지를 펼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애기 위해 순간순간 스마트 폰 잠금장치에 손이 먼저 가게 한다.
스마트 폰 사용자의 증가는 난독증 환자 확산과 비례할지도 모른다. 게임과 오락 프로그램 동영상 다운로드 증가 수는 그만큼의 독서 장애인의 증가 나아가 문자 텍스트의 가치, 곧 ‘책의 죽음’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문자 텍스트를 읽도록 권하는 일, 무의미하고 비논리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자체 ‘충족성과 완벽성 그리고 불변성’의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특별계시, 성경 진리를 무조건 읽어주고 전하고 가르치고 무시로 권하는 전도자의 임무, 이것이 우리 시대 유일한 선한 사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음이 임박한 신앙의 선배는 애절한 부탁으로 신앙의 후배에게 이렇게 권한 바 있음을 새삼 새겨본다.

  2 너는 말씀을 전파하여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여라.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라 귀를 즐겁게 하려고 자신들을 위하여 선생들을 많이 끌어 모을 것이다. 4 또 그들은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이나, 5 너는 모든 일에 깨어 있어 고난을 받고,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너의 직무를 완수하여라.(딤후 4:2~5/바른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첨단 미디어의 간계: 세계의 우민화!
종교 딜러의 종말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