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9-26 20:4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분수에 맞는 인(仁)


子貢曰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如何 可謂仁乎.
자공왈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여하 가위인호

자공이 말했다. “만약에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많은 이들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인(어짊)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子曰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자왈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저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을 행한다고 하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일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것을 오히려 병으로 여겼다.”



『논어』 「옹야」편의 계속이다.
‘박(博)’은 ‘널리(廣)’라는 뜻이다. ‘인(仁)’은 이 본문을 이어서 “자기가 서고자 하는 곳(지위, 깨달음의 경지 등)에 남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는 곳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입이입인, 기욕달이달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자는 이 ‘인’을 ‘이치(理)’로 이해하여 위(사람들 또는 지위 등)와 아래(사람들 또는 지위)로 모두 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성(聖)’은 이치로 통합되는 것이 지극한 수준에 달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공자는 ‘박시어민이능제중’을 인과 성을 아우르는 경지의 태도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인과 성의 경지가 어느 정도냐면 요임금과 순임금조차도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병으로 여길 정도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자는 자공이 박시어민이능제중을 실천하여서 인을 이룬다는 것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라는 의미였다.
아마도 자공은 늘 스승 공자가 말하는 인의 경지를 여러 방면으로 실천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자신이 인의 실천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에 나름 인을 이루는 방도를 생각하던 중에 나중에 자공이 관리 등으로 등용이 된다면 그때 백성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건져낼 때 인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친 것 같다. 그렇게 생각되는 순간 자공은 스승에게 이 견해를 피력해 보였던 것이다.
공자는 자공의 자질이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많은 백성에게 은덕을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는 일은 자공에게 힘들 것으로 판단하였다. 자공의 자질과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는 일로써 인을 이루고자 한다면 보나 마나 실패하게 되고 자공은 더욱 인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에 공자는 ‘박시어민이능제중’을 언급하고서 그것은 성인인 요임금과 순임금조차 하지 못하여 병으로 삼는 정도라는 말로 자공을 교훈한 것이었다. 그 대신에 공자는 자공이 인을 행할 수 있는 방도로 앞에서 언급한 ‘기욕입이입인 기욕달이달인’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공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인의 요소들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더 큰 인의 단계로 나아갈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자공의 경우를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사실 순수한 그리스도인일수록 한꺼번에 많은 선을 행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도나 선교를 시작할 때 자신의 부모나 친척 또는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북한과 같은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나 무슬림 전도와 같이 박해가 심한 곳에서의 선교가 더 순수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단번에 험지의 선교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모두가 다 바울 사도처럼 해외 지역이나 타 문화권 안에서 전도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전도나 선교는 일단 그리스도인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말씀을 전하고 자신의 진정한 행위 등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게 해 나가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심이 있으면 그때 해외 등으로 나가도 전혀 잘못되지 않는다.
기도나 성경공부, 또는 봉사 등등 신앙실천에서도 마찬가지다. 차근차근 훈련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기도의 내용과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좋다. 성경읽기나 성경연구도 서서히 밟아가면서 시간을 늘리고 방법을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봉사 역시 조용히 한 분야에서부터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은혜를 단번에 또는 단기간에 베풀기보다는 주변의 사람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장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면서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 안에서 스스로 영웅시하는 태도란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한 번에 많은 전도를 하고 은혜를 입게 했다면 그 경우에서만 그랬을 뿐이다. 그(녀)가 누구이든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스스로를 자랑할 것이 없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주신 은혜를 따라 묵묵히 선을 행하는 신자로 살아가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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