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10-17 22: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마흔여섯.오순절과 유럽 기독교의 종말, 성경권위 회복의 여명


성가대는 예배에서 보통 설교 시간을 준비하며 합창하지만, 이곳에서[아프리카 가나의 한 오순절 교회에서-필자 주] 성가대는 시종일관 결코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몸을 떨고, 소리를 지르고, 펄펄 뛰며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며 부른다. 회중들은 그들을 따라 함께 한다. 보통 이러한 모습은 한 시간을 넘긴다. 이곳에서 설교자는 굳이 설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흥미롭게도 설교를 뛰어넘는 예식(liturgy)의 승리를 보여준다.

위의 장면은 현재 아프리카 가나의 한 오순절 교회 예배 시간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자기 체험의 오순절 방식대로 자기 좋을 대로 노래 부르고 고성과 괴성을 지르며 정신적 발작까지 동반하는 행위를 성령의 충만함으로 여기는 현장의 모습이다. 이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오순절교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설교가 굳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절대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배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예배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물론 설교가 형식적으로 예배 순서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기독교 예배의 증거는 될 수 없다. 얼마나 성경 진리에 충실하고 있는가가 예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적 요란으로 자기 체험에 몰입하는 현장에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정독하고 숙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한 예배라면 이는 더 이상 기독교라고 할 수 없다. 미국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확장한 이 오순절주의는 확장세를 보이면서 극단적인 종교적 체험이 마치 정상적인 기독교로 자리를 잡았다. 각 개인이 신이 되어버리는 이 “영적 체험의 절대적 개별성”(462) 현상은 이방 종교의 전형들이다. 범신론과 신비주의가 혼합한 광적 행동이 성경 말씀의 권위를 집단적으로 몰아내 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증명하는 문제는 우이독경일 뿐이다. 한국 교회에도 광풍처럼 몰아쳤던 오순절주의가 현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궁극적 관심을 ‘삼박자 구원’이나 ‘번영신학’에 두었던 면을 고려하면, 성경 진리는 도구화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오순절주의의 세계적 득세 현상은 성경권위의 추락의 필연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절대진리의 소멸과 함께 각 개인의 다양한 종교적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봇물을 터뜨렸다고 할 수 있다.
오순절주의가 성경권위를 몰아내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절대화하면서 무신론을 가속화하고 있다면, 유럽 사회는 성경권위가 추락한 자리를 경제적 풍요가 만든 사회적 시스템이 대신하면서 무신론을 가속화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20세기 현재 유럽 교회의 상황을 교회역사가 메클로흐는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균형 있는 경제 사회를 구축한 이 대륙[유럽-필자 주]에서 더 이상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 필요할까? 사실 유럽인들은 20세기 자신들이 스스로 초래한 두 차례 전쟁을 통해 지옥을 경험한 바 있다. 그들의 눈에 천국이나 지옥은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교리적 신앙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종교적 가르침이나 절대적 이데올로기 없이 이 땅에서 천국에 대한 야망을 대신할 세상을 건설하기 원했다.(456)

성경과 기독교를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니체의 ‘신의 죽음’을 공식화하면서 유럽은 자신들이 과거부터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약탈한 재물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강한 제국을 만들고자 한다. 세계 패권 국가의 지위가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강대국에 의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서구인들의 관심은 세속적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이합집산할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사일 것이다. 무신론이 보편화하고 수만 개의 교회가 철폐되는 현 상황에서 남아 있는 유럽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권위를 확정하기는 심히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광적 오순절주의자들의 자기 체험이 절대화하면서 성경진리를 저버렸듯이, 하나님 나라를 세속 국가로 대체하려는 유럽인들에게 성경권위는 헛웃음만 자아내는 지경이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절망과 좌절은 항상 하나님의 은총의 시작일 때가 허다했다. 다시 맥클로흐의 진단과 바람을 들어보자.

이제 더 이상 종교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 사회에, 기독교가 그 수많은 얼굴들을 통하여 여전히 우리 사회는 종교가 중요하다고 깨우쳐줄 수 있는 새로운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까? (……) 기독교 안에 있는  (……) 신비의 경험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비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묵상에서 온다.(463-64)

하지만 유럽인들은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진리로 확정하는 데 실패했다. 어떻게 경청하고 묵상해야 성경 전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유일한 증거인지 확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클로흐의 소원처럼 유럽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는 일에 실패한 데서 비롯했다면, 그 해답도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 대안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아프리카든 오직 성경권위에 바탕을 둔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한 시대이며 누구보다 한국 교회가 확증해야 할 과제이며 몫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으로 한국 교회를 통해 미완의 종교개혁이 성경권위 회복과 함께 완수되길 고대한다.

<232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어진 사람은 자신도 서고 다른 사람도 서게 한다
분수에 맞는 인(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