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02-28 21: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마흔아홉. 성경권위 부재(不在)와 황제의 교회 통치


“신학적 논쟁 뒤에는 신학만큼이나 권력의 정치와 관계된 몇 가지 숨은 주제가 놓여 있었다.” 초대 교회 역사에서는 삼위일체론, 그리스도의 양성(신성/인성) 나아가 성령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타오른다. 그런데 그 논쟁의 해결은 성경 진리로 돌아가지 않고 동로마 황제의 손에서 최후 판결이 난다. 황제의 판결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유는 황제가 성경 지식에 탁월한 식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교회들은 황제로부터 경제적 및 정치적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황제의 명을 떠받드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종교의 자유를 반포한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이은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반포한 후 황제는 기독교의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종교회의에 적극 개입했다. ‘로마 제국 내의 기독교 단일화’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황제는 종교회의를 소집하는가 하면 종교적 논쟁의 최후의 재판장 역할을 자처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라 공포한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판정은 황제의 판결이었다. 황제는 동일본질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성자는 인간과 같고 성부와 같은 본질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를 정죄했고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손을 들어준다. 성경에 근거해 신학 논쟁을 해명한 것이 아니라, 황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중요한 신학적 문제의 진/위를 판결했다. 황제가 정치적 계산을 고려함으로 내린 이러한 교리 판정이 성경 진리에 부합할 리가 없다. 성경 진리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그래서 성경의 절대권위에 모든 피조물이 복종해야 한다는 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절대 ‘진리의 기둥과 터’에 세워야 할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가 황제가 주는 부와 권력에 현혹당한 채 초대 교회는 교회의 절대표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양성론 논쟁 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정치적 권력이 크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양성론의 문제는, 나사렛 출신 한 청년이 어떻게 전 우주를 구원하는 구속주가 될 수 있는가,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구세주가 어떻게 우리와 같은 인간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들어있다. 이에 대해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계열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물과 포도주처럼 분리 불가한 상태로 보았고, 시리아의 안디옥 계열은 두 본성을 물과 기름의 상태와 같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시리아 학파는 광신적일 만큼 자기 금욕적인 태도로 자기파괴를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자기 의(義)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자신들의 인성을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357) 

물과 포도주의 혼합처럼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 알렉산드리아 계열은 인성 속에 ‘포함된’ 신성을 강조하여 마리아가 잉태하고 낳았던 예수는 신성을 포함함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 제국 전체에 번져 나가면서 마리아 숭배가 로마 제국 내에 보편적이며 정상적인 종교 행위로 자리 잡았다. 시리아 안디옥에서도 마리아 열광주의가 빠르게 확산했지만, 이에 대해 제동을 건 인물이 있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 428-431 제위)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시간의 창조자이며 신성은 창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리아는 ‘인간의 어머니’이며 그런 한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정도로 칭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리아를 지나치게 숭배하려는 자들은 이방신 ‘어머니 여신(mother-goddess)’ 숭배자라고 비판했다.(359) 하지만 당시 종교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네스토리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이는 동방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해결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가 아니었다. 황제의 권력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론 중심에서 보면 황제의 권력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 아래 있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의 권위가 교회를 무너지게도 하고 세우기도 하며, 죄의 권세에 맡겨 타락하게 하여 심판하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역사에 대해서는 교회 역사를 좀 더 살핀 후 더 분명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431년 황제는 에베소 공의회를 소집한다. 그리고 교회의 분열을 막고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절대 다수파인 네스토리우스 반대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하나님 어머니’라는 호칭을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신학적 문제는 세속 황제의 판단이 결정했다. 네스토리우스는 황제의 명령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정죄와 모욕, 파문과 파멸의 종국을 맞이했다.

그리고 에베소 공의회 개최 20년 후 451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인근 칼케돈(Chalcedon)에서 황제가 다시 공의회를 소집했다.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중용의 입장을 만들고자 개입했다. 그 결과 양성론에 대해 잘 알려진 칼케돈 신조가 등장했다. 그리스도는 “신성에 있어 완전하고 인간성에 있어 완전하며 참 하나님이고 이성적인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인간이다. 그의 신성에 관한 한 아버지와 동일본질이고 그의 인성에 관한 한 우리와 동일본질이다.”(36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 참 하나님과 참 인간, 동일본질의 신성과 동일본질의 인성의 표현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 기독교는 이 개념들을 검증을 통과한 내용으로 보고 진리처럼 사용한다. 하지만 우선 이 표현들이 과연 성경적인지 명확한 검토와 증명이 필요하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 개념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적어도 신학적 전제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본성과 사역에 대해 앞의 개념들이 얼마나 유효적절한 전제가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검토 대상이다. 동로마 황제가 내린 판결문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믿는 자들을 형식 논리학의 오류추리에서는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졌다고 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儀文)에 순종하느냐(골 2:20)



<238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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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