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03-21 20: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그리스 비극 정신을 논리적 추론으로 압살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의 원형이 된다. 이론적 낙천주의자는 사물의 본성을 규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의 힘을 부여하며 오류를 악덕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니체 초기 철학의 충격은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해체를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니체가 소크라테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견디기 힘든 인생의 모순과 비극 상황을 극복하고자 생존 전략으로 만든 ‘신화적 예술’을 근본적으로 왜곡했다는 데 있다. 삶의 부조리는 비극 정신을 담고 있는 예술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짓을 소크라테스가 꾸몄다는 것이다. 예술의 방식이 아닌 언어 논리를 통해 삶의 모순과 비극쯤에는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는 거짓 자부심을 불어넣은 용서할 수 없는 지적 사기꾼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앞의 인용에서 나타나듯이, 소크라테스는 서양 언어의 논리적 형식을 사용해 인간이 바른 진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삶의 모순과 비극도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통제하고 결국 모든 사람이 원하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실천했다. 그리고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만든 가상의 진리가 마치 불멸의 진리인 양 모든 사람들이 실천하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자기 소신을 독배와 바꾸기도 했다.
니체는 인간이 결코 견딜 수 없는 삶의 모순과 비극을 은폐하고자 날조한 소크라테스의 이론적 낙천주의도 용납할 수 없지만 다음 사실은 더 용서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언어 논리(변증법)로 가공한 가상의 전제들이 마치 영원한 진리처럼 인간 내면에 ‘도덕적 양심’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도덕적 실천을 통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나아가 이러한 과정이 영원불멸의 세계가 도달하는 길인 것처럼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언어 논리를 통해 궁극적 진리가 마치 있는 듯 사실화하고, 사물의 본질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성에도 ‘순수한’ 무엇인가 있는 듯 거짓을 꾸몄다. 언어적 인식을 통해 견딜 수 없는 인간 삶의 부조리와 모순을 소크라테스는 ‘악한 것’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비극의 정신을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몰아내고자 한 시도는, 니체가 볼 때, 불멸의 영원한 진리를 소크라테스가 확신했다기보다, 자신이 날조한 이론적 낙관주의를 그리스 사회에 강제로 이식하여 비극을 억제하려는 ‘만병통치약’처럼 팔아먹으려는 약장수와 같은 짓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약장수 소크라테스의 지적 낙관주의는 이후 서양 정신문화를 지배하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 된다. 반드시 불멸의 진리가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그 진리는 실천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날조한 소크라테스의 지적 낙관주의는, 유대 기독교를 만나면서 그야말로 영원한 진리로 둔갑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러한 진리 낙관주의에 분노하고 있다. 가령 니체가 “사물의 근거를 천착하고 가상과 오류에서 진정한 인식을 분리해내는 일이 소크라테스적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조명, 그 자체로 하나밖에 없는 정말이지 인간적인 소명으로 생각된다”(118)고 평가할 때, 고대 그리스 비극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이미 죽은 것이다. 삶의 모순과 비극이 오히려 가상과 허구가 되고 이는 도덕적 양심의 실현을 위한 도구이거나 방해물일 뿐이다. 모순과 비극은 삶을 해롭게 하는 ‘악’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지적 낙관주의는 기독교를 만나고 기독교를 도덕 종교로 전락시킨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죽으면서 독배와 바꾼 이른바 불멸의 영원한 진리는 기독교에서 ‘천국의 진리’로 둔갑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고대 그리스 비극 정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고, 지적 낙관주의를 통해 인간 내면의 도덕적 양심을 불변의 진리로 날조하여 기독교가 서구 정신을 지배하는 과정을  니체는 이렇게 정리한다.

개념, 판단과 추리의 메커니즘은 소크라테스 이래 다른 어떤 능력들보다 더 높이 평가되었고, 최고의 활동, 경탄할 만한 자연의 선물로 여겨지게 되었다.(118)

소크라테스가 마음껏 활용한 논리 곧 변증법은 언어의 논리적 규칙이 오류가 없을 때는 반드시 진리라는 것으로 향한다는 확신을 준다. 가령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가 진리면, ‘어떤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그런데 ‘어떤 죽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거짓이 된다. 이러한 논쟁에 빠지면 처음에는 단지 문법적 규칙에 따라 만든 단순한 문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문제가 소위 ‘진리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욕구가 발동하고 이는 가상의 진리 세계를 가공하게 된다. 개념을 문법적 규칙에 맞게 모으면 명제가 된다(사람, 죽음 ->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명제를 논리적 규칙에 맞게 배열하면 이른바 진리 주장이 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러한 논리적 추론 방식을 모든 언어 사용의 규칙으로 보편화하면, 진리란 존재해야 하고 이러한 진리를 선명하게 밝히는 데 장애가 되면, 가령 모순과 비극을 무질서하게 드러내는 행위를 하면 그것은 진리 발견에 해악을 끼치는 ‘악’이 된다. 바로 이러한 진리 날조의 발상을 만들어 서구 정신 역사를 황폐하게 만든 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망가져버린 서구 정신 역사를 니체는 이렇게 정리한다.

가장 숭고한 윤리적 동정심, 희생심, 영웅심과 아폴론적 그리스인들이 절제의 미덕이라 부르는 얻기 힘든 영혼의 고요조차도 소크라테스와 그의 사상적 후계자들에 의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변증법에서 추론될 수 있는 것, 따라서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118-119)

젊은 청년 니체의 번뜩이는 통찰은 서구 지성사의 축인 논리학자 소크라테스를 재판정에 올렸다. 그리고 니체와 그 후예들은 ‘신’을 죽였듯이 소크라테스도 죽였다. 동시에 소크라테스가 믿었던 자기 내면의 확신인 도덕적 양심도 허구임을 폭로했다. 그 결과 날조된 선/악 판단에 토대를 둔 도덕 종교 곧 서양 기독교도 종말을 고한다.
우리는 인간의 도덕이나 논리적 판단으로는 결코 진정한 진리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바울 사도의 기록을 다시 주목한다.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10-15)

<239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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