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역사에서 해방되는 것, 차라리 망각하라!
우리는 삶과 행위를 위해서 역사를 필요로 하지, 삶이나 행위를 편안하게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가 삶에 봉사하는 만큼 우리도 역사에 봉사할 것이다.
그리스 비극 정신에 자기 철학의 뿌리를 두고 있는 니체의 초기, 바젤 대학 문헌학 교수로 재직할 당시, 19세기 독일의 중심적 역사관은 낭만주의와 실증주의였다. 낭만주의 역사관(Romantic Historicism)이란 역사적 사건과 해당 사건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관적 감성에 호소하면서 이해하려는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은 개별 민족이 경험하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특히 강조한다. 당연히 민족주의와 연관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니체가 보기에 향후 독일 사회에 큰 불행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보였다. 실증주의 역사관(Positivist Historicism)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을 표방하며 역사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는 탐구 방식이다. 이로써 연구 목표로 삼는 바는 객관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치밀하게 분석하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학자들은 사건들을 인과법칙에 의해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객관적 증명을 중시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엄격히 배제하고자 한다. 인문학인 역사를 자연과학으로 수립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반영된다. 니체는 이러한 실증주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객관성에 대한 확대는 역사를 단순화하고 인간의 창조적 의지와 경험의 반경을 축소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두 역사관에 대해 비판적이다. 비판의 척도는 앞의 인용에서 보듯이 삶과 행위를 그 당시 역사관이 왜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객관화하고 역사 자체를 맹목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곧 삶과 행위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삶이나 행위에 대해 현실성을 배제하고 초월적 이념을 앞세우거나 과거의 위대한 역사를 기념비적으로 고착화하는 것을 니체는 견딜 수 없었다. 현재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삶에 봉사하는 역사가 될 수 있으며, 니체는 바로 이러한 역사를 다시 쓰고자 시대를 거부하는 역류문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19세기 독일 사회를 지배하는 역사관의 폐해를 니체는 이렇게 지적한다. 자신의 “고찰이 반시대적인 것은 (……) 나는 우리 모두가 소모적인 역사적 열병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적어도 우리가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288) 낭만주의나 실증주의 혹은 이미 고착화가 진행되는 변증법적 역사관도 니체에게는 소모적 열병으로 인간의 생생한 의지를 스스로 억압하는 고문의 도구로 보였다. 가령 니체가 “미덕의 과잉은-우리 시대의 역사적 의미가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악덕의 과잉 못지않게 한 민족을 파멸시킬 수 있다”(289)고 할 때 니체는 역사에 대한 과장된 의미 부여가 지나친 도덕적 이상을 만들고 종교적인 규범처럼 고착화하여 개인의 자유와 창조의지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미덕이든 악덕이든 당대 독일 역사학은 니체에게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모두 삶에 봉사하기는커녕 삶을 억압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삶에 봉사할 수 없는 역사라면, 니체에게는, 오히려 탐구 자체를 시작하지 말아야 하며,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역사적 사실을 아무리 객관적인 증거 자료로 남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의 삶의 의지에 과연 얼마나 유익한가를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니체는 삶에 봉사하는 이러한 능력을 역사적 능력이 아니라 ‘비역사적 능력’이라고 규정한다. “가장 작은 행복에서도, 또 가장 큰 행복에서도 행복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하나다. 잊을 수 있다는 것, 또는 학문적으로 표현한다면, 자신이 지속되는 동안 비역사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292) 차라리 삶에 봉사하려면 역사를 기억하기보다 우선 망각하는 연습부터 하라는 것이 니체의 역사 탐구의 원칙이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비역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은 한 개인이나 한 민족 그리고 한 문화의 건강에 똑같이 필요하다.”(294. 고딕체는 원문에 따름) 역사적인 것을 고집하는 만큼 비역사적인 것을 존중하라! 개인이든 민족이든 문화이든 즉 모든 인간의 삶에서 비역사성의 역사성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헌학자 니체의 역사 탐구의 원리다.
역사를 철저하게 상대화하는 니체에게 역사적 법칙은 분명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역사를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나 불변의 법칙에 대해서도 니체는 온몸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증주의든 낭만주의든 변증법이든 니체는 삶 자체가 무엇인지 또한 과거 역사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정의가 사라진 상태로 젊은 문헌학자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초월적 원리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증보다는 강요받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성경을 차분히 상고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지식에 도달하는 것은 정황상 불가능했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진리의 말씀을 차분하게 숙고할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은 20대 후반의 비판적 회의론자인 그 청년에게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32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2-35)
<259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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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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