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은 무엇인가?
역사적, 지정학적 용어인 시온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히브리어 단어인 ‘시온’은 ‘요새,’ ‘안전한 곳’ 또는 ‘성채’라는 의미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시온의 역사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의 기혼 샘이 내려다보이는 여부스의 요새를 점령했던 주전 1050년에 시작되었는데(대상 11:4∼9), 다윗 왕은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 그는 이곳을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다.
다윗의 도시 ‘시온’은 오늘날 성전산(모리아 산)이 있는 곳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행정 건물들과 왕궁이 있었던 오펠로 알려진 언덕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바치려 했고, 이후 주전 961년에 솔로몬 왕이 야훼를 위한 성전을 지어 봉헌했던 곳이다.
‘시온’의 이름은 다양한 의미의 변화를 겪었다. 성전이 예루살렘의 주요 장소가 되면서 이곳은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시온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시온이라는 이름은 왕상 8:1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전의 여부스 족속의 요새에서 성전산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예루살렘의 성전산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성지 순례의 목적지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방향이 되는 ‘시온’으로 이해되었다.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산 방향으로 기도를 해왔다.
오늘날 예루살렘 구도시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높은 언덕은 ‘시온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가톨릭의 성모 영면 성당이 있다. 13세기에 십자군은 이 곳에서 성서 시대의 회당을 우연히 찾아냈고, 다윗 왕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러한 생각은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라는 행2:29의 문자적인 해석에 기초했다. 이곳은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다락방 밑에 있다. 그들은 이 곳에 있던 빈 무덤 위에 기념비를 세웠고, 이후로 이곳은 다윗의 무덤으로 유대인들에게 경외의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시편 기자 시대에도 이곳은 ‘시온’으로 알려진 성전산 및 예루살렘 도시를 일컫는 장소였다. 이러한 이해는 포로기 동안 더욱 확장되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든 땅을 ‘시온’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시온의 딸’로 불렸다. 따라서 성전, 예루살렘, 땅 그리고 백성은 모두 ‘시온’이라는 은유로 결합되었다. 여기서 현대 시온주의도 유래했으며, 예루살렘 없이는 유대 국가도 없다는 생각은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애국가 하티크바 (희망)는 ‘시온의 땅과 예루살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640번이나 나오지만, 코란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