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선민을 통한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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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서>
제3장 하나님의 섭리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은 역사가 발전하는 원동력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의 여러 특징은 근본적으로 생산양식에 의하여 규정되고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러할까? 이러한 유물사관으로 인간세상의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가! 물질이 아니라 정신세계가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증거도 얼마든지 있다.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과 응전이라는 방식으로 역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도전과 응전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유대민족 등은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엄청난 도전이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역사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불교의 사상 중의 하나인 윤회설처럼 인간은 윤회하는가? 인간도 다시 태어나고 우주도 다시 태어나서 끝없이 반복되는가? 아니다. 우주는 영원히 윤회할 수는 없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여 모든 자발반응은 무질서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지며 그 극도의 시점에서 모든 반응은 멈춘다. 따라서 인간도 지구도 태양도 우주도 궁극적으로는 윤회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인간세상의 역사와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과 명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도 아니고, 도전과 응전도 아니고, 윤회도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분명한 시작이 있고 끝도 있다.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천국 실현으로 이 땅에서의 역사는 종말을 맞는다. 따라서 유물사관이나 도전과 응전 또는 윤회사상 같은 것은 부분적인 것을 잘 해석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른 많은 부분을 설명할 때 곧 벽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을 주관하는 최고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인다. 우주와 인간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들어 놓으시고 멀리 떠나 계셔서 주무시거나 졸고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위대한 정치가나 영특한 과학자나 영향력이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미래나 역사를 사람이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만큼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는 직선적이다.(성경적기독교, 박용기, 115p) 창세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하늘의 역사도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운행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주관하시면서 동물과 식물을 다스리시기도 하신다. 그리고 바다를 잠잠케도 하시며 해를 멈추게도 하신다.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동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장 극적인 천문학적 현상인 일식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천문현상까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 요나의 사건에서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은 틀림없이 천지를 지으시고 오늘도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렇지 않다면 요나의 사건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인간 세상의 역사 그리고 천문현상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1절 선민을 통한 섭리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이 우주 전체에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장 중요하다. 지구를 위하여 온 우주가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제일 중심에 인간의 역사가 있다. 이 인간의 역사의 가장 중심에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일어나고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역사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리고 그 계시의 가장 중심은 무엇인가? 바로 언약이다. 그렇다면 언약의 중심은 무엇인가? 언약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임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대가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듯이, 예수님에 대한 역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세상의 모든 사건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언약과 성취로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세계와 세계경제와 정치와 문화와 문명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정치와 역사와 사상과 철학을 해석하는 문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어떠한 역사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해석되지 않는다. 선민에 대한 역사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언약과 성취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3대언약(성경신학개론, 박용기, 136p)을 성취하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의 내용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고, 신약은 이 언약에 대한 성취의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관계가 있다.
아래의 그림은 성경신학에 따른 성경의 전체구도이다.(Ibid., 470p) 성경의 전체구도를 언약과 성취로 구분할 수 있으며 언약과 성취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방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심이 성경계시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28절)
이 성경구절을 일반적인 문화명령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세 가지로 구분되어진다. 첫 번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다스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국가의 3요소이다. 국민, 국토, 국권이다.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자 동시에 예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신령한 나라에 대한 그림자적 사건을 구약의 선민들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사건이 구약 전체 속에서 나타난다. 아담에게 주어진 이 복은 노아에게, 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약속의 자손에게 전승되면서 성취된다.
야곱은 12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갈 때는 약 70명이었으나 출애굽 당시에는 싸울 수 있는 장정만 약 60만 명에 이르게 된다. 모든 민족 구성원을 합하면 적어도 200만 명은 족히 될 것이다. 약속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다. 나라에 가장 기본이 되는 국민이 번성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는 노예상태이므로 주권도 없고 영토도 없었다. 하나님은 평안한 상태에서 번성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종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번성하게 하시는 것이다.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과, 종살이 하던 선민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소개하는 데 필요한 나라였다. 종살이를 하면서 민족이 번성되게 하시고 그들을 노예상태에서 이끌어 내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으로 교육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번성과 교육의 목적을 마친 애굽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출애굽 과정에서 수많은 기병들과 병사들이 홍해에 수장되고 수십 수백만의 노예들이 사라지므로 이때부터 애굽의 국력은 급격히 기울어진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영토를 갖게 하신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번성한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나간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신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나간다. 그 결과 이스라엘백성 12지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다.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러서 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통치다운 통치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에 뒤지지 않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토의 경계를 정하여 주셨으므로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던 것이다. 이상적인 나라의 모델이었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위협하거나 침략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정략적인 화친을 맺기 위하여 공주들을 바치기도 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서에서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리하여 생육하고 정복하고 통치하는 역사가 구약에서 그림자적으로 모두 이루어졌다.1)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에 대한 그림자적 사건이다. 이와 같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유대인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기독교인을 말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울이 잘 이야기하고 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장 28~29절)
즉, 하나님의 백성이란, 로마서 2장과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창세전에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란,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그들과 일부 이방인들이고, 신약시대에는 바로 교회이다. 그러나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실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역사는 이루어져 나간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국민을 형성하게 하시고 땅을 정복하여 국토를 갖게 하시고 다윗과 솔로몬으로 하여금 통치하게 하시어 주권을 확실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의 왕이 오실 것을 준비하셨다. 그림자적으로는 3대 언약이 모두 성취된 셈이다. 이제 그 나라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교육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3대 언약을 이루어 나가신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제국을 일으키시는데 이들 제국의 존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교육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제국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교육시키는 몽둥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마다 고통을 겪게 하시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함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이 형성되게 하시고 유대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교육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바벨론은 유다를 망하게 하고 그들을 포로로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제국이었다. 성경은 70년 동안 예루살렘이 안식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후 70년 동안의 예루살렘의 안식이 끝나고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미리 예언한다. 그리고 그대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페르시아의 존재는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제국이다. 페르시아는 앗수르나 바벨론과는 달리 지방화 정책을 펼치도록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시키셔서 바벨론시대에 잡혀온 포로들을 예루살렘에 돌려보내도록 하신 것이다.(성경과 고대정치, 조병호, 195p)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땅을 안식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70년 동안 교육시키기 위하여 앗수르를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을 일으키셨으며, 70년이 끝난 후는 다시 바벨론을 망하게 하시고 페르시아를 일으키셨다. 이것을 선지자로 하여금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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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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