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만물과 천체를 통한 섭리
<지난 호에 이어서>
3절 만물과 천체를 통한 섭리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므로 인간의 이해여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의 역사도 운행하시고 바로의 마음도 강퍅하게 만드시고 전쟁에서 이기게도 하시고 지게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세계의 역사뿐만 아니라 천체의 운행까지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늘도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없다.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운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기드온이 오래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멈추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오랫동안 어두워졌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인간으로서 확인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인간 지성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지으신 분이시므로 태양이 멈추게 한다든지 잠시 동안 빛을 잃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 ‘오래 전 큰 폭발이 일어나 세상의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든지 ‘분자가 모여 사람이 되었다’든지 이러한 것들은 과학적이라고 하면서 잘 받아들인다. 실로 놀라운 현실이다. 어떤 한 사건에 대하여 인간이 이해가 되는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가는 관계없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의 역사와 천체의 역사를 동시에 주관해 나가신다. 참 하나님이시므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와 동시에 천체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일식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행성과 그들의 위성을 보면 크기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행성은 매우 크지만 그 위성들은 작다. 태양계에서 행성의 위성들은 약 150개 정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주된 행성에 비하여 매우 작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의 위성인 달이다. 달의 직경은 지구의 약 25% 정도 되는 상대적으로 매우 큰 위성이다. 위성이라고 취급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지구와 달을 쌍둥이 행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왜 달은 다른 위성과는 달리 유별나게 큰 것일까? 왜 달은 이토록 커야만 했던 것일까? 커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가 존재하는 것일까? 위성의 크기가 행성의 약 25%나 되는 것은 태양계 내에서 유일하다. 이것 외에도 또 하나 매우 신기한 것이 있는데 태양의 직경은 달의 직경보다 약 400배 크다. 그리고 태양은 달보다 약 400배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의미가 있다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태양이 달보다 직경이 약 400배 크고 약 400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지구에서 인간들이 태양과 달을 볼 때 그 크기가 거의 같아 보인다. 크기가 같아서 태양이 달에 가려지는 일식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달이 태양을 가려서 마치 대낮에 태양이 사라진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놀라운 것을 우연으로 생각한다. 달이 지구에서 1년에 약 38mm씩 멀어지고 있는데 수십억 년 지나는 과정에서 태양과 달이 비슷하게 보이는 특별한 시기에 현재의 인류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행운이 아주 우연하게 주어진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 사실에 대하여 놀라지 않는 그들은 어떠한 특별한 자연현상을 만나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강퍅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당장 그리스도가 눈앞에 나타나셔도 그들은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부인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랑과 은혜와 기적 그리고 너무 분명한 표적을 우연과 고집과 벌레의 형상으로 바꾸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여운 사람들이라고 동정하기에 그들은 너무 완고하고 고집스럽다. 달의 크기에 대하여서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숨어 있다. 달의 크기와 달의 거리가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일식이란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상에 늘어서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간적으로 볼 때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한 장소에서 해가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다음 개기일식이 일어나려면 약 300년이 지나도 관찰하기 쉽지 않다.(일식과 월식이야기, 나일성·이정복, 25p) 300년을 기다려서 개기일식이 지속되는 시간은 약 7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시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지구의 관점에서 태양을 보았을 때 태양이 다니는 길을 황도라고 하고 달이 다니는 길을 백도라고 한다. 일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황도와 백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태양-달-지구’의 순으로 나열되어야 한다. 그리고 달의 그림자가 매우 좁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걸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즉, 일식이란 공간적으로 매우 좁은 지역에서 일어나며 시간적으로도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이로써 일식이 표적으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 일식의 사건이 인생들의 역사적 사건과 연루되어진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이 성경을 통하여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 사건이 역사 속에서 일어났으며 그 사건이 일식과 관계되어졌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과 같은 하늘에 있는 천체의 운행과 땅의 모든 일들을 일일이 주관하신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일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속에서 여러 번 일식과 관계있는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일반 세계사에서도 요나시대의 일식은 잘 정리되어져 있으며, NASA(미항공우주국)의 웹사이트에서도 요나의 일식은 장소와 연대를 정확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니느웨 도성의 회개를 일반학자들은 진실이라고 믿지 않고 고대 소설 정도로 취급하지만 니느웨 도성의 회개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재앙과 더불어 결정적인 회개의 계기로 일식이란 수단을 사용하셨다. 대낮에 태양이 꺼져버린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강한 경고를 주기에는 알맞은 천문현상이다.
요나서는 다른 성경과는 달리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많아 보인다. 일반 역사학자들과 다수의 신학자들로부터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성경이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요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요나의 성의 없는 경고를 받아들여 앗수르 제국의 왕과 모든 신하들이 회개하였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더욱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당시에 니느웨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했던 앗수르 제국의 중심도시였고 요나는 식민지의 촌부였을 뿐이다. 식민지의 보잘 것 없는 청년인 요나가 ‘회개하라’라고 외쳤다고 해서 그 큰 제국의 왕이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회개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기 어렵다. 이것은 오늘날 후진국가의 어느 청년이 미국의 워싱턴에 가서 ‘미국이 수일 내로 멸망한다’고 고함지른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과 모든 장관들이 나와서 엎드려 통곡하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앗수르 연대기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의 앗수르 제국은 여러 민족이 모여서 구성이 된 다민족국가였으며 내부 단결이 쉽지 않았다. 요나가 니느웨에 간 그 해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제국의 내부로부터 상당한 위협적 요소가 생겨났으며 이 반란은 약 5년간 지속이 된다. 그 몇 해 전에는 전염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전 나라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어수선하던 때에 요나가 일어나서 40일 후에는 이 제국이 망한다고 예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련의 사건의 중심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일식이다. 일식을 고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가 하는 것은 기원전 585년의 일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당시 메데 제국과 리디아 제국은 6년 동안 치열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원전 585년 5월 28일 해 질 때 즈음 갑자기 하늘이 캄캄하게 되었다. 태양이 갑자기 꺼짐으로 인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로 인하여 병사들은 신이 노하였다고 받아들이고 너무 놀라서 칼과 창을 던지고 모두 도망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6년 간의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사건은 일식이 심리적으로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본보기이며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식이다. 요나가 예언할 당시 니느웨에서도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앗수르 제국의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던 그 해에 요나가 제국이 망한다고 예언을 하였으며 또한 일식도 일어났다. 일식이 일어난 것은 앗수르 연대기에서도 기록하고 있고 오늘날 컴퓨터 가상추적으로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데이터는 NASA(미우주항공국)의 일식기록에 그 시간과 좌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763년에 일어났던 그 일식의 좌표는 니느웨가 있던 그 자리이다. 반란과 홍수, 전염병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하여 상당히 의기소침하던 차에 하나님의 사자라는 자가 나타나서 제국이 망한다고 예언을 하고 또한 결정적으로 신이 노하였다고 인식되는 일식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결정적인 것은 그 날의 일식은 보통의 여느 일식과는 다른 점에 있다. 태양과 달이 일치하는 그 옆자리에 목성이 있다는 것이다. 목성은 고대로부터 귀한 사람이나 왕을 의미하는 별이다. 즉, 점성술에서 왕의 운명을 살펴볼 때 이 목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목성이 일식이 일어나는 자리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당시 니느웨 사람들은 이 현상을 최고의 신이 진노하여 자신들의 제국과 그 왕을 멸망시키려 한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상당히 의기소침하여 있는 그 상황에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자가 나타나서 40일 후에 제국이 망한다고 하고 예언하며 그 징조로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진노의 한가운데 왕이 있다는 것(일식이 일어나는 그 자리에 목성이 있음)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아무리 담대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천하를 호령하는 제국의 황제라 하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이 진노하심을 주변 환경으로 느끼게 하시고, 또 직접 선지자를 보내서 말로 전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늘의 해와 달과 목성을 통하여 보여주었는데 목석(木石)이 아닌 이상, 하나님에게 엎드려 회개하고 자신이 낮아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앗수르 제국의 황제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렇게까지 보여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일식이라는 사건은 시간적으로 매우 희귀한 사건이며 공간적으로 매우 좁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앗수르 제국을 매우 곤경에 처하게 하셨으며 이 모든 여건을 모두 준비하신 후에 하나님은 요나를 보내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준비하시려면 바다의 큰 물고기도 준비하셔야 하고 요나를 바다에 빠뜨렸던 뱃사람들의 인생사도 주관하셔야 하며 앗수르 제국이 일어나게 하셔야 하며 징계를 위하여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도 준비하셔야 한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군의 마음도 주관하셔야 하며 태양의 궤도도, 달의 위치도, 목성의 운행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관하셔야 한다.
요나시대에 니느웨 도성의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태양과 달을 만들 때부터 400배 차이가 나도록 만들어야 하며, 지구, 태양, 달의 거리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셔야만 한다. 그리고 달을 다른 모든 위성보다도 크게 만드셔야 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긴 시간 동안 땅과 해와 달을 운행하셔야만 한다. 그리고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어 니느웨에 그림자를 드리워야 하며 그때 그 도성의 백성은 매우 타락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된 후 하나님이 요나를 보내신 것이다. 실로 인생사와 천체를 동시에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경배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과 먼지보다 작은 바이러스와 각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두 주관하셔야만 이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는 것이다.
진실로 인생의 역사와 천체의 운행을 동시에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어찌 요나의 사건뿐이겠는가. 천체와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이 나의 걸음과 나의 호흡과 나의 존재를 주관하신다.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 숨 쉬게도 하시며 존재하게도 하시며 하나님을 찬양하게도 하신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나 그 하나님이 오히려 영원토록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진실로 인생의 역사와 하늘의 모든 천체들을 주관하시는 그분이 나의 하나님인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그야말로 날마다 날마다 감사와 찬송의 연속인 것이다. 할렐루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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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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