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여성의 지위 여성에 대한 안수의 정당성
Ⅲ. 여성 안수에 대한 성경적 판단
고대사회의 여성관은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가부장제도에 따른 결과이며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남성우월주의 성향에 따른 여성순종사상이 지배적이다. 성별을 초월하여 남녀의 구별이 모호한 문화를 접하며 살아가는 21C에 이러한 논의 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이고, 상호 협력적 보완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조화의 극치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완벽한 연합의 결정체이다.
그런데 고대사회의 규범과 전통에 따라서 남녀의 관계가 주종관계의 등식으로 고착화되고, 더욱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남녀차별에 대한 정당성을 확고히 한다는 것은 현대 교회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남녀의 차별을 인간세계의 순종 체계로 규정하여 세계를 섭리해 오셨다면, 오늘의 현 시대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체계에 대한 인간들의 반란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현시대의 여성관을 비롯한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남자 돕는 배필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파괴이며,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배워야만 하는 순종체계에 대한 항거라는 말이 된다.
성경의 왜곡된 해석은 잘못된 교리와 체제를 낳고, 현재를 올바로 직시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형성하게 하며, 보수(保守)라는 명분하에 현대사회의 급변하는 현상을 이해하려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여성 리더십의 문제는 교회가 그 타당성을 확보하여 이제라도 바로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될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1. 구약시대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
첫 번째, 창조를 통한 남성과 여성의 이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형상은 남녀를 외형적으로 구분하는 모양이나 형태가 아니라 영적인 내면세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신이시므로 형상이 있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의 형상’이라는 말을 하실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상’하면, 단순하게 어떤 크기(size)나 모형(type)과 같은 것을 생각하지만 에베소 4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내면세계에 관한 것으로 사도 바울은 묘사를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는데,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모습,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image)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과 같은 내면적이고 신령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외형적인 크기나 모형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시초부터 차등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성별과 기능을 통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등은 신령적인 내면세계를 무시한 결과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보이는 외형이나 남녀 간의 기능적인 차이 또는 생물학적인 특성 때문에 차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하나님은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2:18). 여성의 리더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창조의 시점부터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의 역할이기 때문에 남자의 지배를 받는 위치에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배필의 의미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상대적인 관계에서 우위를 가리기 위한 척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독처(獨處)하는 모습을 좋게 보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아담이 단순히 독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홀로 자존하시는 절대자이시기 때문이다. 피조물 아담이 홀로 독처한다는 것은 절대성에 위배되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아담이 홀로 독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언약하신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아담에게 돕는 배필(配匹)을 만들어 주시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돕는 배필의 근본적인 성격은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계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데 있다. 또한 신학적인 의미로는 돕는 배필로서의 여자는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지체된 교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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