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선지자
성경의 언어<51>
참 선지자는 진리인 선지자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만이 참 선지자다. 모세와 엘리야는 참 선지자의 예표이다. 모세와 엘리야를 거짓 선지자로 규정하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모세는 죽음을 맛 본 선지자이고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은 선지자다. 이러한 두 가지의 측면은 참 선지자가 죽고 부활하는 것과 관련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여줄 때에 그 변화된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초청된 것이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여기서 의미심장하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이다. 모세의 죽은 것과 엘리야의 죽지 않음에서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참 선지자를 확인하려면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대비하여야 한다. 참 선지자의 조건이나 요소를 분석함으로 신구약성경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1) 목숨 주는 선지자
진정으로 목숨을 줄 수 있는 자격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분이다. 신약성경에서 세례요한이 이 땅에 오는 것을 엘리야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이 이 땅에 오는 것을 이사야서와 말라기에서 예언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엘리야가 신약성경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구약성경에서 태어났던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해 있다가 세례요한으로 태어난다면 거의 메시아에 가까운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들을 통해 메시아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 같은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은 각각 메시아의 일면을 미리 예표해주고 상징한다. 구약성경이 시작되는 천지창조로부터 아담과 선지자들은 오실 자의 표상이며 예표이다. 구약성경의 모세와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결부시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약시대의 특정인에게 인간적으로 바로 동등시 하는 것은 성경을 오해한 결과이다. 선한 목자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던져 죽는 것은 구약성경 전체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도덕이나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논리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언약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에서 화를 내고 감추며 저주하고 있지 않는가? 구약성경 전체가 오직 메시아를 언약하고 있다. 그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는 죽으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살려고 오셨다. 참 선지자는 죽어 삼일 만에 부활하신 분이다.
2) 영생 주는 선지자
목숨을 주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아주 밀접하다. 영생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영생을 위하여 죽는 것은 그 방법인 셈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결과이면, 그 영생을 위하여 죽는 것은 그 과정인 셈이다. 참 선지자는 진리이기 때문에 동시에 길이고 생명인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을 성경에서 전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한다면 생명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를 언약하고 있다. 그 메시아의 생사(죽음과 부활 )를 전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에 연결시켜 생명을 확인하지 않고서 알 길이 있겠는가? 생명을 확인하지 못하고 어떻게 영생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목숨 자체에 생명이 있는가? 인체 자체를 아무리 쪼개고 분석해도 그 안에서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자기 스스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하였다. 그 분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목숨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신 것이다. 신구약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만한 요한복음 5장 39절은 “너희가 성경을 자세히 살피니, 이는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바른성경』)고 확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主) 안에 영생이 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엘리야나 세례요한으로 혼돈스럽게 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풍조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있어 왔다. 그것은 영생을 주는 참 선지자를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주신 참 선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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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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