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 칙령과 예루살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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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앞서 문명 권역의 충돌을 『일반국제정치학(상)』에서 1960년대에 내다보았던 한국 정치학의 태두 이용희는 한국 근대사의 주요한 특징으로 민족사와 국가사의 괴리(乖離)를 언급했다. 한국 전통 회화에 대한 탁월한 미적 안목을 가진 연구자이기도 했던 그는, 강대국의 시각이 아닌 내 땅의 시각에서 국제정치를 보아야 한다는 지론 아래, 일제에 의해 제도로서의 국가는 위축당했을지 몰라도 민족의 실질적 삶의 공간은 확장되었음을 강조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긴 축복이었다는 특정 단면을 부풀린 몰상식과 달리, 해박한 인문학적 통찰을 가졌던 선생은 문명의 권역 및 전파를 골자로 한 국제정치학의 보편적 이론을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식민지 홍역이 어떤 잠재력이 될지 모를 유례없는 단기간의 세계화를 가져왔듯, 주전 6세기 바빌론 포로기를 즈음해 본격화된 유대 민족의 이산(離散), 곧 디아스포라의 시작은 정하신 기한에 준하여 복음이 선민과 이방인 모두에 선포될 거대한 역사의 서막이었다. 바빌로니아뿐 아니라 이집트 26왕조 아프리에스(589~570)가 나일 강 엘레판틴 섬에 건설한 군사 식민지에 유대인들이 용병으로 거주한 파피루스 기록이 보이는데, 이외에 암몬, 모압, 에돔 등지로 흩어진 유대 민족 상당수는 전란 후에도 귀환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은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라(신 28:64) 이르신 주권적 언약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가는 모습이었다.
남유다의 선별된 정치, 종교, 학문적 지도층들이 주를 이룬 바빌론의 포로들은 4,600명(렘 52:30) 정도였지만, 이들은 위기에 직면한 민족의 신앙에 새로운 방향을 찾고 나아가 옛 예루살렘 터에 재건될 유대 공동체를 꿈꾼 정예적인 소수였다. 너희 땅의 노래 한 가락 불러보라는 조롱에 실향자들은 바빌론 강기슭에 앉아 버드나무에 수금을 건채 시온을 추억하며 울었을 터이나, 그리 가혹한 삶의 조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정 구역에서 집을 짓고 생업에 종사하며 나름의 모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점차 일정한 부와 권세를 갖춘 자들 또한 등장하게 되었다. 에스겔이 머물던 그발 강 근처, 니푸르의 주전 5세기 정황이 담긴 상업 문서인 무라슈 토판에 기록된 몇몇 유대인의 이름과 경제 활동 기록은 포로들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며 정착지에 안착했던 사실을 알려준다.
외조부의 나라 메디아의 엑바타나, 최초로 금화를 사용했던 리디아의 사르디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중심 바빌론을 차례로 아우른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2세는 538년 유대인의 귀환과 성전 재건의 칙령을 공포하였다. 앞서 바빌로니아의 수호신 마르둑의 소명을 받아 바빌론을 해방시켰다 내세웠듯,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대제국의 화합을 위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가졌던 왕의 호의는 정치적 선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페르시아 지역에서 신의 사자의 계시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바하이교의 핵심 교리가 신, 종교, 인류의 인본주의적 일치라는 사실은 섣부른 에큐메니즘(세계 교회주의)의 위험성을 시사한다. 각설하여 자신의 신 목록에 하나를 추가한 고레스의 정치적 의도까지라도, 선지자 예언(사 44:28, 렘 29:10)의 성실한 성취로 당신의 살아계심을 확증하시는 여호와 장중의 선한 도구일 것이다.
옛 세대들과 이상주의자들은 성전이 있던 본향을 그리워하였으나 이미 이방 문화에 순조로이 적응된 다수는 지도자들의 귀환 권고를 반기지 않았다. 열조의 신앙과 전통을 유지하면 됐지 굳이 허허벌판의 생고생을 치를 까닭은 없었을 것이나 - 때로 계산된 현실주의가 아닌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인생의 생명줄이 드리우듯 - 여호와의 예정된 경륜은 회복의 언약을 바라본 귀향자들로 고난의 길을 걷게 하였다. 성전의 초석을 놓던 날, 처참히 무너진 첫 성전으로 50여 년간 아파했던 노인들의 대성통곡(스 3:12)은 끝끝내 못난 자식을 포기하지 않은 신실한 아버지 사랑을 깨달은 감읍이었다.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복음과 함께 서진함을 밝힌 토인비의 이론을 빌자면, 미국 문명권이 환태평양 문명권으로 서천(西遷)하는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나 예수께서 그리스도 되신 복음을 믿어지게 하신, 우리가 돌아갈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어지게 하신 은혜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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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1) |
기독교 신앙의 원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