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09-05-29 09:1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한국에서의 이슬람(3)

급증하는 이슬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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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이슬람 포럼이 여러 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한 이슬람의 증가와 더불어,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증가를 한국교회는 염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반 이슬람 정서는 2007년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서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이 납치당하면서 확산되었다. 아프카니스탄 피랍사건을 두고 교회 내부에서는 그 이후 얻는 득이 많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교회의 신뢰도가 추락한 것과 맛 물려 국내에서 100만의 선교 대상자를 잃었다고 하는 비판도 있다. 그 이전에는 이슬람권 선교를 위한 연구가 꾸준히 있어 왔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서처럼 이슬람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력한 반대는 없었다.

장벽 더 높이 쌓는 이슬람관련 포럼

첫째, 이슬람 포럼에서 얘기 되는 바는 대부분 공관적(共觀的) 형태를 띠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비교, 입증되지 않는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선교 전략, 그리고 이슬람 선교를 위한 전략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연재한 글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점을 언급하였다. 핵심교리의 차이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 선교의 전략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의 선교를 해야 한다.”, “보내야 한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식이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대안이 없다.

둘째, 이슬람 협오증의 생산과 유포의 장소이다. “이슬람은 전쟁을 허용하는 종교이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내용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의 역사가 어떠하였는가를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의 신구교의 종교분쟁은 기독교가 전쟁을 가르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십자군 전쟁을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갈등의 원인이 종교에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석유 자원의 문제, 민족주의 대두, 후기 식민주의 담론까지, 그 배경이 녹녹치 않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 무슬림들의 정체성의 강화의 배경에는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글로벌화(grobalization)와 무관하지 않다.

셋째, 셋째, 이슬람권에서 선교하다가 추방당한 선교사들의 문화 자본을 활용하는 포럼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들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못하게 하였으니까,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활동을 견제해야한다. 국제 결혼한 가정이 이슬람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는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가? 복음은 핍박 속에서 더 활발하게 전파되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선교란 선교지의 실정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이 절대적이지만, 그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문화 중심주의

이 같은 모든 것들이 기독교가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 포럼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의 편지를 소개하였다. “제3세계 문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은 학생은 수업인지 포교인지 모른다는 불만을 토로한 편지였다. 그 학생은 “매주 여러 대학 수많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포교활동이 행해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했다. …… 이러한 문제는 부패하고 나태해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깨어 기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귀한 뜻이라고도 생각된다.”고 하였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맘(Immam)은 필자에게 방글라데시에서는 선명회가 구호활동을 통해서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기독교 구원의 유일성을 부인 것을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변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 학생은 그 수업을 듣고 그들의 문화, 선교방법을 생각하여보고, 그 학생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귀한 뜻을 발견하면 된다.

종교적 관용

이슬람 포럼에서 종교적 관용(religious tolerance)을 말하는 발제자들은 없었다. 내가 싫어하고 반대하는 대상을 억압하고 제거하려는 불관용이 불러온 폭력을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역사 속에서 보아왔다. 관용은 분쟁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덕적 덕목인 동시에 유일한 길이다. 근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이슬람과 연관되어 있지만, 기독교 신앙에도 마찬가지로 반영되어 있다. 근대화로 인해 불안정하여진 개발도상 지역들의 주민들, 집단들 내에 종교적인 이상과 과격한 배타성을 갖추고 상당수의 사람들을 매료시킨 저항적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기독교의 문화발전 역시 기독교 외에 다른 집단을 용납하지 못하는 근본주의적 흐름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종교들 스스로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위해 가르침인 종교적 관용을 폐기시켜버렸다. 종교적 정신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게 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 종교로서의 의미는 물론 본연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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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성막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한국에서의 이슬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