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여성의 지위 여성에 대한 안수의 정당성
2.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
두 번째, 초대교회의 여성 이해 바울은 여자의 머리에 수건을 쓰는 유전에 관한 문제 해결을 통해서 남녀의 관계를 정리한다. 바울은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라는 말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로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교회에서는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11~12)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복음적 남녀관계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재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남녀의 동등성과 상호주의가 적용된 것임을 과감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견해는 당시 사회 전반의 모든 구조 체계를 해체시키는 혁명적 발상으로 진일보하여 모든 계층 간의 차별까지 해소한다(갈 3:28). 초대교회 안에서는 상전과 노예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권력 계층과 죄인들이 함께 성찬에 참여하며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봉사하는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했다. 바울은 빌레몬의 노예였으며 범죄자였던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로 취급하지 말고 형제로 받아달라는 권면을 통하여 당시의 통념을 초월한 상호주의를 표방했다. 이러한 바울의 남녀평등사상과 상호주의의 주창에도 불구하고 해석학적 문제 때문에 가부장적이며 남녀 차별의 남성지배사상을 주장하는 부류가 있다. 여성의 리더십을 격하시키고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의 글을 인용하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그리고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 2:12)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자들이 성경을 맥락적으로 해석하여 이해하지 못한 해석학적 착오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최소한 앞뒤 문장을 연결시켜 맥락에 따라서 풀어나가야 하며 당시의 상황과 배경을 확실하게 파악해서 이해해야 한다. 여성의 리더십을 반대하는 자들은 성경을 한 구절만 채택하거나 아니면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인용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본문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채택한 디모데전서 2장 12절은 한절만 인용해서는 안되며 최소한 2장 9~15절까지의 문장 전체를 맥락에 맞게 해석해야 그 의미가 제대로 밝혀진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9~15) 위 문장의 핵심은 ‘여자는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장 전체를 맥락에 맞게 해석하면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초대교회는 교회마다 여성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역할이 다양한 반면, 은사남용으로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여성들 간의 파벌의식으로 분파된 파당과 영지주의 이단에 접해서 교리적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이런 배경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견고히 세우기 위한 교회의 정당한 행정과 치리를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여성들의 리더십에 대해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라고 단호하게 권고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창조의 질서와 타락의 주도적 역할론을 통해서 설명하는데, 여자는 남자보다 나중에 창조되었고 여자가 먼저 유혹을 당해 범죄에 가담하게 되었음을 주지시킨다. 여성의 리더십을 반대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해석을 멈추지만 본 문장 해석의 열쇠는 접속사 ‘그러나’에 있다. 바울은 교회에서 보통 여성들은 일절 순종하고, 종용히 배우며,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을 삼가야 되지만,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러나”는 ‘그렇지마는’, ‘그러하지마는’ 뜻의 접속부사로서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에는 전자의 요구나 규칙을 초월하는 반대급부의 의미가 있으며, ‘만일’은 헬라어로 “~할 때는 언제나”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의 말을 정리하면, 여자들이 언제든지 정절(자제)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여자는 범죄의 주범이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언제든지 여자가 해산의 수고와 같은 고통의 연단을 통해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여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이르는 성숙된 신앙 자세와 본을 보인다면, 가르치는 사역과 남자를 주관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2장 12절 한 구절만을 단서로 여자의 리더십을 묵살하려는 자들의 어리석은 태도는 해석학적 오류임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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