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원형
22.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의해서만 세워집니다.
The church is created only by redemption.
우리는 지난번에 “교회 설립의 영원한 기초인 예정”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즉 지상위의 교회의 설립이 역사내의 인간의 의도와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창세 전 영원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임을 확인 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교회 설립의 역사적인 기초”에 대해서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의 역사적 기초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하는 사건에 기초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신적 특성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단마디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없이는 이 땅위에 진정한 교회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교회란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에 입각할 뿐 아니라 역사 내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마련한 방법에 의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통해 그 설립의 구체적인 기초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이 땅위에 행하신 사역 중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절정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 사역의 최종적인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키는 것입니다(롬5:8).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무엇으로 드러내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치르시고 대신 죽음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구속 사건에 의해 우리 성도들이 죄사함을 얻고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주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안에서 그리고 구약의 언약대로 오셨습니다. 그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능을 지니고 있는 분이며 죽은 사람을 살리심으로 인생의 생명과 사망을 주관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적자 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시고 치욕과 고통의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그리고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마침내 죽으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리의 길이며 하나님 사랑의 계시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 자기 백성의 죄악을 대신 걸머지시고 죽어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택한 백성에게 죄사함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런 구속의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 인생은 죄 가운데서 해방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이제 죄의 종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죄악의 노예에서 벗어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어 졌습니다(골 1:13). 그리하여 만물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신분이 바뀌어 진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이런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통해 드러난 무궁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부단히 전함으로 그 은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이런 구속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이에 대한 오해는 한국의 크리스천 중에 만연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상 구속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한 백성을 향한 전적인 은혜를 드러내시는 가장 중요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구속의 진리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는 구속함을 받는 인간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인간 자신이 전적으로 타락된 존재가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은 그렇게 절박하고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를 부분타락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이 타락하기는 하였으나 부분적으로만 문제가 있으며 인간의 이성 기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전하다는 식의 이해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중세신학의 그릇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구속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 정도이며 거기에다가 인간의 선행과 공로가 부가되어야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성립됩니다. 이런 엉터리 구원의 가르침이 역사상 너무도 오래토록 지속되었고 오늘날도 교묘하게 변형된 방식으로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인간 편에서의 정성과 그로 말미암는 보상을 기대하는 무속적 심리와 결탁하면서 구속의 진리를 무효화시키는 경우가 실상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 결과 교회의 임무를 전혀 잘못 이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로만 가톨릭의 교회관이며 지금 개신교에서도 더러 그런 오류의 전철을 따르기도 합니다. 즉 교회가 성도의 구원을 분배하는 기관으로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오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의 가능성만 열어놓으신 것이며 실제 역사가운데서 구원을 결정하는 권한이 교회에 주어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교회가 인간의 구원을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이는 구원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이며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의 의미와 교회의 임무를 완전히 왜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가능성만을 열어놓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구원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를 성령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그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성도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런 구속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성도가 모여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구원을 베푸는 기관이라는 로만 가톨릭의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입니다.
개신교에서도 전도 지상주의자들은 복음을 전함으로 “인간의 구원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대로 로만 가톨릭의 오류와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간의 구원을 비로소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실과 이천년 전 십자가위에서 죽으심으로 확증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죄사함을 얻은 성도에게 “구원의 풍성한 은혜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집을 나와 방황하며 불안해하는 어린아이에게 그를 결코 잊지 않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며 그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분임을 가르쳐주고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해가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교회는 모름지기 이런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초로 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노력이나 정성의 토대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교회가 교회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복음 진리입니다. 다음에 만날 때 까지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era is founded on Christ’s redemptive work. The church cannot be established by human efforts to meet man’s worldly and fleshly needs. This is a fundamental biblical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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