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5-01-18 19: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경기교육의 줄기와 뿌리


“경기교육의 흐름을 알면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가 보인다!”
지나친 주관이며 일개 지역을 평가절상한다는 비판을 받겠지만 대꾸할 근거는 있다. 민선 3기 연속으로 소위 진보교육감이 선출된 경기도다. 경기도교육청은 기존의 틀을 뒤흔든 정책들을 많이 시행하고 있다. 보상교육, 생활교육을 포함한 혁신교육이나 민주적 학교운영 등이다. 이는 보수가 바라보는 교육에 관한 입장인 수월성교육, 학력신장 및 질서와 권위에 대한 강화와 대조된다. 이러한 근본 입장 및 실천 성과의 판단이 진보교육감 득세라는 선거결과로 나타났으며 타 지역까지 경기교육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보상교육은 기회의 평등관점에서 내용적 평등관점으로의 변화를 말해준다. 기회의 평등이란 헌법 31조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보장적 의미다. 따라서 국가는 법률적으로 취학의 장애를 제거하고 의무교육을 보장해야 한다. 내용적 평등이란 교육의 결과로 나타나는 학업성취나 이로 인한 소득, 삶의 기회에 있어서 격차가 작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맥을 같이한다. ‘콜맨(Coleman)보고서’가 기원이다. 콜맨은 학생들의 교육격차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로써는 지능이 결핍되었거나 교사의 낮은 질 등이 빈약한 학업성취도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콜맨 보고서에 의하면 교육격차는 문화적 환경, 즉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수준 및 부모의 기대 등에 의해 특정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헤드스타트운동( Project Head St-art)’이나 우리나라의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을 선정하는 것 등이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정책이다. 
생활교육은 근대적 학생관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근대적 학생관은 학생들을 미숙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본다. 말하자면 학생 간 갈등이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어른들이 판단하여 상벌을 부과하고 교통정리 해야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체벌로써 잘못된 행동을 응징해 왔으나 시대적 조류는 그것을 비인간적인 처우라고 규정했고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 ‘상벌점제’다. 그렇지만 상벌점제는 운영상 불공정성에 휘말리기도 했고 문자알림서비스를 받는 학부모들의 불만도 야기했다. 무엇보다도 교육은 갈등 당사자 간의 회복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상벌점 자체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나타난 것이 생활지도에서 (회복적)생활교육이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약속을 정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학우 법정제’와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나아가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학생중심교육의 발현이다. 특히 경기도교육감이 강조하는 사항으로서 학교마다 획기적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적 학교운영에 대한 열망은 현장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다. 그동안 학교현장은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으로 운영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랜 시간 교직생활을 통해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과 관련하여 경험한 실례를 거론하는 데에는 일주일도 부족하다. 의견제시나 교육에 대한 자율적 권한도 제한되어 왔으며 교직원 전체가 요구하는 합리적 의견도 묵살되곤 했다. 우리나라 교장의 직업만족도가 세계1위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민주적 자치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시나브로 관리자에게도 심어지고 있다는 것은 학교가 변화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책들을 고상하게 정리하자면 교육복지, 학생중심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이다. 경기도를 비롯한 다수의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를 검토하고 있는 내용의 줄기다. 이러한 줄기에서 나온 다양한 정책들은 권위나 공급자 중심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환영받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확고한 교육철학에서 나왔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선출직인 교육감들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제시된 내용의 뿌리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로서 혹은 교사로서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되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탐색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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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원형
북이스라엘 역사의 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