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여성의 지위 여성에 대한 안수의 정당성
2.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자들의 또 다른 주장은 고린도 교회의 예를 들어 반박한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방언과 예언을 무질서하게 시행하는 여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의 본질과 종류 그리고 성질과 구성을 설명하고, 13장에서 최고의 은사이며 은사 시행의 동인이 되는 사랑을 구하라고 명한다. 그래야만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분쟁하지 않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4장에서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을 따라 방언과 예언을 구하라 명(命)하면서, 무질서한 은사 시행으로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고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질서정연한 태도를 촉구하는 가운데서 문제의 여성들에게 아래와 같은 교훈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고전 14:33~36)
따라서 위의 인용구는 모든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문구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 은사를 무질서하게 사용했던 문제의 여자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며 여성 전체에게 항구적(恒久的)으로 지시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 구절 때문에 한국 교회 여성들의 리더십에 이의(異意)를 제기한다면, 초대교회에서 문제를 유발한 사례가 여성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빈번하게 발생하였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여성의 리더십이 고린도 교회의 은사 남용 문제로 봉쇄된다면 한국 교회에서 모든 여성은 침묵해야만 할 것이고, 특히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질 것이다.
바울은 구약의 부부 관계와 상반된 새로운 부부간의 질서를 제시한다. 구약에서 남자는 주인이며 지배자요 여자의 소유주이고 아내를 돈으로 살 수 있으며 일방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동등하며 아내는 남편의 성적 소유물이 아니라 여자도 동등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위치임을 주지시킨다. 부부간의 성적(性的)관계에 있어서도 자기 임의대로 성적관계를 끊을 수 없으며, 기도하기 위한 일에는 상호간에 동의가 필요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동거할 것을 권고한다(고전 7:3~5). 남녀평등에 대한 바울의 철저한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피차 복종하라”는 더욱 강한 메시지를 선포한다(엡 5:21).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힘에 순종하라는 부부의 바람직한 자세를 촉구한다(엡 5:22~31).
어떤 이들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부부의 자세에 대해서 남편의 사랑이 먼저인가 아니면 아내의 순종이 우선인가 하는 차서에 신경을 쓴다. 과거 한국의 부부관은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에 물들어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으로 상징된 가부장적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주장하려는 주도권 쟁탈에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과연 부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 남존여비의 주종관계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어떻게 평등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이것은 교회의 비밀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주께 순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랑의 깨달음과 감동에 따른 순복이다. 그런데 부부간의 사랑이 절대적일 수 없고 피차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려는 자세는 한시적이다. 서로 상대방을 통해서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피차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순복하라”고 말한다. 사랑은 강한 자만이 실현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사랑의 힘의 원천은 절대적이며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충전된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는 주종관계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평등관계도 아닌 사랑의 관계이다. 사랑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에너지는 쌍방 간에 충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본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장전(裝塡)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피차 복종하는 부부관계의 새 지평을 제시하였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비하해서도 안 되며, 서로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된 자들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 순복하는 이상적인 남녀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언약하고 있는 계시서이기 때문에 계시적 관점에서의 해석은 필수이다. 창조의 과정과 심판의 내용을 빌미로 남성지배사상과 주종관계를 고착화 시켜선 안 되며, 구약의 사회제도를 근거로 해서 가부장적 제도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구약에 대한 해석학적 오류는 시대문화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더욱 위험한 발상은 구약을 근거로 그릇된 문화를 답습하는데 활용해서도 안 된다.
구약성경에 대한 언약성취사적 해석은 구약의 남녀 창조와 타락에 대한 심판의 의미나 유대사회 전반의 제도와 종교적 직무를 현대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취사역에 초점을 맞춰 풀이한 것이다. 언약성취사적 해석의 결론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통해서 실체적이며 신령적 의미로 이해된다.
남녀의 창조는 남성과 여성의 주종관계나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적인 계시이다. 타락 이후 선언된 하나님의 심판 내용도 신부인 교회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순복할 것에 대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몸 된 관계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적인 계시이다. 구약에 나타난 기름부음 받은 삼직도 장차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실 성자 예수의 직임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적인 계시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와 사랑의 힘으로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차등이 존재할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한 지위와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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