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4-10-19 12:3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솔로몬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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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은 우리로선 양만춘에 격퇴당한 침략자이나 중국인들에겐 최고의 천자로 추앙받는 명군이다. 제왕학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정관정요의 정치철학을 남긴 그가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려운지를 어느 날 중신들에게 묻자 방현령은 창업, 위징은 수성으로 답했다. 이에 태종 이세민은 교사(驕奢)는 부귀로부터 나옴을 경계하며 창업기는 끝났기에 바야흐로 수성에 진력할 것을 다짐한다. 공언대로 제국의 탄탄한 기반을 다진 그가 친형제를 죽이고 보좌에 올랐던 과정은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 자주 비교되는데, 두 인물 공히 왕조의 연착륙을 위한 악역을 마다치 않았다. 솔로몬 시대의 번영 역시 부친 다윗의 대적 진멸을 위한 정복전과 숨 가쁜 내분의 격동기를 지난 후에야 찾아든 것이었다.

왕권 강화를 위한 얼마간의 진통을 거쳐 어느 현자보다 더욱 지혜롭게 하신 은혜를 입은 솔로몬의 시대는 제국 최고의 절정기였다. 중앙 집권화를 이룬 정치적 안정과 활발한 상업 및 무역에 힘입은 경제적 풍요는 지혜 문학의 만개로 이어졌으며, 한편 이와 대조되는 700여 명에 달한 아내는 외교적 동맹의 결과로 파악되는데 가장 긴요했던 존재는 게셀을 지참금으로 가져온 파라오의 딸이었다. 이집트 21 왕조의 파라오 시아문(Siamun)은 멀리 흥기하는 아시리아를 견제하고자 솔로몬과의 우호 관계를 도모했을 것이며, 성전 건축의 조력자로 잘 알려진 두로의 히람 역시 솔로몬의 등극을 축하하는 사신을 보내온다. 여호와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린(대하 22:8) 연유로 소망을 이루지 못한 부친을 대신하여 솔로몬이 세운 영광 가득한 여호와의 전은 화려함 뿐 아니라 가나안 모든 신전의 규모를 능가하는 위엄이었다.

확대된 왕실 재정과 정비된 행정 제도의 유지를 위한 조세 제도의 확립, 매해 들어오는 주변국으로부터의 공물, 지중해와 인도양에까지 이른 무역선의 부로도 (13년이 소요된 궁전 등) 솔로몬의 광대한 건축 사업을 충당하기란 만만치 않아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었다. 유사 이래 무리한 토목을 일으킨 다수 통치자의 끝맺음이 좋지 않았듯 이는 결국 왕국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금광이 없는 지역에서 지성소에만 정금 6백 달란트(약 23톤)를 쏟아 붓고 각종 성전 기물들에도 막대한 금을 입히기 위해 들였을 신성한 노고는, 치세 후반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를 벗어나 우상 숭배에 빠져든 솔로몬의 실족으로 인해 퇴색되고 만다. 요컨대 솔로몬, 스룹바벨, 그리고 헤롯의 성전에 이르기까지 훼파와 모독의 부침을 겪었던 외형적 성전의 결말은 허망한 파멸이었다.

어디든지 땅은 시체로 덮여 있었고 병사들이 도망가는 이를 잡고자 시체 더미를 올라타야 했다던 유대전쟁사의 주후 70년에 대한 비참한 묘사는 여호와께서 철저히 이스라엘을 외면하셨음을 암시한다. 한 로마 병사가 던진 불붙은 짚수세미로부터 성전이 불탔던 날은 공교롭게도 첫 성전이 파괴된 때와 같은 아브월 9일이었으며, 평화의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라 명령한 로마 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부쉈던 로마의 힘을 후대에 과시하고자 성전 벽의 서쪽을 남겨두었다. 약속의 땅에서 배부르고 살찌면 하나님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을 팽개친 채 우상에 매몰됨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신명기의 예언이 이루어진 자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묵묵한 교훈으로 우리를 삼가 돌아보게 한다.

간인(看人)에 지간후반절(只看後半截)하라던, 곧 사람을 평가하려거든 그 삶의 후반부를 보라 일렀던 선인의 격언에 준하자면 찬란한 부귀 중에 교만과 사치에 빠져 왕국 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솔로몬의 말로는 실패한 수성(守成)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허무와 무의미에 몸부림쳤던 그의 통회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는 하나님 절대 주권과 영원성의 순도 높은 배움을 위해 불가피한 시간이었다. 최고 지혜자의 지혜를 무참히 꺾으셨으며 민족이 두 동강 나버린 비극을 내리셨으나, 다윗 왕조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던(왕상 11:36) 여호와의 신실하심은 오직 은혜의 회복과 보호로 이루신 언약성취의 역사에 밝히 드러났으며, 여기에 성도의 영원한 소망이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자리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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