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리 왕조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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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위한 평화가 끝나가던 5현제 시대의 마지막은 플라톤이 꿈꾸던 철인왕(哲人王)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다. 탁월한 스토아 철학자였던 그는 황제로서 수행해야 할 책무만을 잡음 없이 완수했던 고결한 성품의 인격자이자 유능한 행정가였다. 학자적 소질을 타고난 그의 숙명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고단한 전투였으며, 황궁 아닌 막사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어울리지 않는 갑옷을 의무감으로 견뎌야 했던 고뇌 속에 진지한 성찰의 『명상록』이 집필되었다. (익히 알려진 바 기독교 박해를 옹호한 외에) 그의 뼈아픈 실책은 어리석은 아들 코모두스를 계승자로 삼은 결정과 지나친 예산을 군대에 쏟은 조처였으니, 쾌락을 좇다 레슬링 파트너에 목 졸려 죽은 코모두스 이후 즉위한 페르티낙스가 3개월도 못되어 살해된 내전의 혼란은 결국 군인황제시대(235~280)로 이어지게 된다.
여로보암 사후 북이스라엘의 왕위 또한 죽고 죽이는 쉴 새 없는 살육전 중에 빠르게 교체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 해를 간신히 넘긴 나답(주전 910~909)의 피살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으며, 여로보암의 왕가를 멸절시킨 바아사 왕조 역시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선포대로 술 취한 엘라(886~885)와 그 일족을 몰살한 시므리에 의해 파멸되기에 이른다. 7일 만에 왕궁에 불을 질러 자살한 시므리를 대신한 6대 오므리(885~874) 이후에야 왕국은 안정기에 접어드는데, 사마리아로의 천도는 후일 아시리아가 이를 함락시키고자 치렀던 수년간의 힘겨운 공성전에서 보듯 군사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국가 기반을 다지고 혼돈의 정세 중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 군주로 평가받는 오므리이나 성경 기자는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한(왕상 16:26) 행악자로 그를 평할 뿐이다.
아시리아 문헌이 ‘오므리의 집(Bit Humri)’으로 묘사할 정도로 세속적 성공을 거둔 왕조를 국제적 강국으로 자리 잡게 했던 이가 7대 아합(874~853)이었다. 그 부친 오므리는 상업적 번창을 위해 시돈의 왕 엣바알과 손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왕녀 이세벨과의 정략결혼이 이루어졌으며, 지중해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시돈과의 공고한 연합전선은 탄탄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집트를 제치고 근동 최강으로 부상하며 서진(西進)해 온 아시리아 살만에셀 3세의 팽창에 반(反)아시리아 연합군이 맞선 카르카르 전투에 아합이 상당한 세력으로 참여한 기록 및 호화스런 상아궁(왕상 22:39)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사마리아 유적지 궁전터의 200여 정교한 상아 파편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흥성을 알려준다.
1868년 메사 석주(Mesha Stele)로도 불리는 모압 비문이 요르단 디반에서 발견되었는데 비문은 모압이 오므리에게 정복당한 과정, 바쳐진 조공의 목록, 그리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난 내용을 통해 강대했던 북왕조 이스라엘의 위세를 전하고 있다. 처음 발견했던 지역주민들이 무슨 보물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고자 깨뜨린 것을 복원한 이 비석이 비상한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아합 사후에 공물 헌납을 중단했던(왕하 3:5) 모압 왕 메사 및 오므리 왕의 명칭이 등장하며 성경 기사에 역사적 신뢰성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보물은 하나님의 이름(YHWH)을 성경 이외의 글에서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34행의 모압어 비문 그 자체였다.)
주변 가나안 문화와 영합했던 오므리 시대의 화려한 물질적 번영에 대해 성경이 자세히 밝히기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길로만 논함은 인간의 생각, 인간의 길과 다른(사 55:8) 전능자의 측량치 못할 깊은 판단에 숙이도록 가르침이 아닐까. 성경이 명시하는 신령한 복의 개념은 창세전 그리스도 사랑 안의 택정(Election)이나, 복 받은 자의 삶이란 바울의 트레 폰타네 참수 돌기둥이 대변하듯 현실적으로는 고난에 더 가까운 길이었다. 여호와 모르는 행악자의 풍요로운 형통과 대비되는 초라한 좌절의 벽을 때로 사랑의 징계로 내리심은, 우리로 감당치 못할 시험 허락지 아니하시는 보호의 연단 가운데 창세전 작정하신 영원한 지혜에 이르도록 하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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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
“쫌 그러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