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4-01-08 19: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교 여성의 지위 여성에 대한 안수의 정당성


2.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

첫 번째, 그리스도의 여성 이해

그리스도의 여성관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으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이며 충격적이다. 21세기 기독교 문명의 혜택으로 남녀평등의 문화권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으나, 당시의 상황을 인식한다면 복음의 메시지가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 사회에서 여성이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한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여성은 법적 증인이 될 수 없었으며, 남편은 아내에 대해 쉽게 이혼을 요구할 수가 있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단순히 이혼의 부당성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권익도 옹호하였다(마 19:1~12). 모세의 법은 이혼 증서만 있으면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성립이 가능했지만, 예수는 아내의 음행한 연고 외에는 허락지 않음에서도 알 수 있다. 유대 사회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되었고 이런 제도는 여성의 종속과 재산화로 인해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되었었다. 예수의 이혼관은 창조 기사를 인용, 남편과 아내가 한 몸 됨을 역설하며 남자의 일방적인 이혼 요구를 차단한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쌍방 모두가 서로를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함으로써 이혼당한 여성들의 권익뿐만 아니라 남녀의 평등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바울에게서 좀 더 진보되어 성적(性的)관계에서도 과거에는 남편이 아내를 성적으로 소유했듯이 아내도 남편을 성적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고전 7:3~4), 과거에 남편이 아내와 이혼해도 간음죄가 성립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본처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들면 간음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의미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통해서 남녀의 동등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남녀가 동등하게 성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여성에게 율법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예수는 많은 여성들에게 토라와 복음을 가르치심으로서 남녀를 대등하게 대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는 마리아가 있었는데 가르침을 사모하는 태도를 칭찬하며 모범적 사례로 내세운 것은 당시의 사회 배경으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눅 10:38~42).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여성들을 채택하여 세운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율법에 의하면 여자는 증인이 될 수 없음에도 예수는 가장 중요한 부활 사건의 증인으로 여자들을 선택하셨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는 배움이 모자라고 미신을 따르기 좋아하는 부류로 비하되어 있었다. 그러한 여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사도들조차 여자 증인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달받고 그대로 전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성을 극도로 차별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이 부활의 처음 증인이 되었으며, 최초로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여 남성들로 구성된 사도들에게 전했으며, 사도들은 여성들에게 전달받은 부활의 복음을 듣고 증인이 되었다.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사도의 구성원에 여자가 없었다며 여성의 지도력을 무시한다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세울 때 왜 여자들을 제외시켰는가에 대해 반문한다. 열둘은 이스라엘의 12족장들에 상응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족장들을 상징하는 12명의 수에 여성을 단 두 명이라도 포함시켰다면 예수와 그의 복음은 엄청난 비판과 저항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12제자의 수(數)에 여성을 한 사람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은 예수의 유대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양보라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 장면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놀랐고(요4:27), 사마리아 여인 자신도 이방 여인에게 물을 구하는 예수에게 의아해 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만연된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한 시대의 문화는 그 당대의 도덕적 규범이 되기도 하고 법적 구속력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질 수도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사회 여성의 사회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여성의 이혼이 치명적인 오점이었을 뿐 아니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있었다. 만약 그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여성을 리더로 내세워 전도 활동을 했다면 복음 확산에 큰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예수의 남녀 평등사상과 개혁적 성향을 한 두 가지 만의 사례를 빌미로 격하하거나 남성 지배 사상을 정당화시켜서는 안된다.
예수는 유대의 가부장적 제도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던 여성들의 인권을 해방시켰으며 남녀동등의 평등관계를 창조의 질서를 통해서 역설했다. 그동안 유대 사회의 일부다처제는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으며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하게 했다. 이혼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랐고 여성은 그 결과에 항변하지 못했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종교적인 계율과 문화적인 관습에 유대 사회는 여성들의 인권이 남성 지배 사상의 사슬에 의해 감금되었다. 예수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여성평등과 리더십을 인정하고 남성지배사상과 여성순종체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물론 예수의 남녀평등사상은 신령한 교회의 비밀을 통해서 재해석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인종차별과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따른 신분차별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적차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빈부차별 그리고 주도층과 소외층의 계층간의 차별까지 사회전반의 모든 격차를 해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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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원형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