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도덕교육이란
최근 이슈가 된 군대 내 가혹행위는 도를 넘어섰고 많은 사람을 공분에 빠뜨렸다. 군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급히 전 장병을 모아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몇 시간의 인권교육으로 인권 친화적 군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순진하다. 새삼 인권과 불가분 관계인 도덕교육을 떠올리게 만든다.
학교나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의 퇴폐적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도덕교육의 강화다. 이러한 시각은 뿌리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덕성의 중심개념은 선과 악이다. 서양의 지성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도덕이 그랬고 동양의 공맹사상이 그랬다. 소크라테스에게 도덕이란 지식으로 이해되며 지식이라 함은 가르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하니 무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도덕교육을 외치는 것은 유구하다. 예상컨대 군부대 인권교육은 도덕적 보편성을 위시로 교과서적이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행여 자신에게 겨눠질 위해(危害)에 대한 방어차원에서 하급자를 학대하지 않도록 설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덕교육으로 사회악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에 동료교사의 도덕과 공개수업 후, 한마디 언급했던 것이 그분과의 관계성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 수업의 목표는 특정한 도덕성을 기르는 것이었고 여러 가지 방안으로 그것의 실천성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공개수업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 긴장감이 상존하기에 역지사지가 발생한다. 가급적 흠을 짚기보다는 좋은 점을 보려고 하며 칭찬거리를 찾아 언급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필자 역시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칭찬 위주로 언급하다가 마지막 말이 화근이 되었다. “여담인데, 저는 도덕 과목이 있을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도덕적 행위는 마음이 평안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 가르쳐야 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거든요. 어느 나라가 도덕이라는 과목을 만들어서 가르치나요?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느는 거죠.” 그분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약간 상기되어 반박했다. 수업 실기대회도 도덕 위주로 했고 전공도 도덕교육이었으니 내 말은 허튼소리였던 셈이다. 그에게 도덕교육이란 사회를 떠받치는 지주(支柱)였고 그것의 성공 여부가 사회의 안녕을 좌우하는 핵심이었다. 석사과정의 사회학 관련 수업에서 살인, 범죄와 관련된 토론주제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해악인지 그래서 도덕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역설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몇 명 죽이면 살인자지만 수천 명 죽이면 영웅으로 떠받들지 않나요?”라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인간의 도덕적 보편성 운운하며 이상한 사람 취급받은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사례와 그분들의 의견에 동조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확인되듯 도덕교육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우리나라는 군자국이 되어있어야 하고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어 소위 ‘한류 도덕’이 회자되었어야만 한다.
과거의 지성으로부터 전수되고 이를 배워야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특정된 도덕성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원래 도덕성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 마음을 내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반 도덕교육이란 피상적 지식의 신장일 뿐이다.
사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듯이 군대 역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학교의 문제도 사회로 귀속되고 군대의 문제 역시 그렇다. 즉, 학교나 군대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군대 내 가혹행위 문제를 군대의 내적 문제로 국한시키거나 인권교육으로 반전시키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지극히 근시안적이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우리네 모습이 그 부대에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또한,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누르고 짓밟아야 내 앞길이 열린다는 이치가 교육을 통해 심어졌고 그곳에서 재현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다. 게다가 도덕교육이라는 겉옷 차림으로 다가가 해결책을 늘어놓는 것이 영 마뜩잖다. 세상의 도덕교육이란 명품 옷을 걸쳐 매혹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감추고 억제하기 위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에게 도덕교육이란 자연스러운 마음과 행실이 우러나오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성경교육의 세상적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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