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행전
-성령행전 따라가기 (1)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성령께서 복음을 어떻게 운반하셨는지를 나타내는 사도들의 행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이라기보다는 사도들을 주도하신 성령행전이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복음의 전파과정을 기록한 복음행전이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진행 과정이 의도적이며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그리고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복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와 더 나아가 땅 끝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려낸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물론 사도행전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것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이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이 움직인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속에는 성령께서 복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고속도로가 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가는 성령의 고속도로를 따라가 보자.
세계선교의 비전과 성령강림 대망
사도행전은 사복음 다음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성경의 편집과정에서 사도행전이 사복음서 다음에 나오도록 섭리하심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사복음서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나님은 성경의 구성 요소 속에서 내용상 순서와 배열까지도 세밀하게 섭리하셨다. 4복음서에서 사도행전으로, 사도행전에서 로마서로 옮겨지는 서열과 배열이 우연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 자체가 언약과 성취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존재증명을 담고 있기 때문에 치밀하고도 분명하다. 그래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 오면서 성경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이슈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언약성취의 대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죽음과 부활 , 그리고 승천 사건이다. 둘째는 제자들로 하여금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과 셋째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성취이다. 또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교회시대의 역사진행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므로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메시아 왕국이다. 이런 비전은 제자들이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제자들은 두 가지의 뜻을 품고 다락방에 모였다.
하나는 세계 선교의 비전(마 28:18~)이며, 또 다른 하나는 세계선교를 이루어 가시는 주체로서의 성령의 강림이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게(행 1:4~5)했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복음의 증인
따라서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언약을 붙들게 하시는 것(행 1:4)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도들로 더불어 120문도가 식음을 전패하고 그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셨다. 드디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어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일(행 2:11)을 말하게 하시므로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그대로 성취시키셨다. 베드로 이하 사도들은 구약을 배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행2:31~32) 증거 했고, 약속대로 사도들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교회의 큰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따라서 복음을 통해서 믿는 자들이 생기면서 그들의 모임이 생겨났다. 이것이 ‘에클레시아’ 즉, 교회(행 2:44~47)공동체였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출범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을 두었다. 이 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단순하지만 구약을 총괄하는 언약의 큰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주제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자기존재증명을 위한 보다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일컬어지는 신령한 성전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성령은 교회와 사도들을 통해서 철저하게 구약의 언약을 배경삼아 그리스도를 주제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게 했다.
핍박과 시험으로 강하고 담대해진 교회
이런 상황 속에서 성령은 성경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한 사건을 터트리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사도행전 3장에 나타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사건이었다. 그는 성전 미문의 걸인이었다.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다 알 수 있는 인물이었다. 성령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행 3:6~10) 하셨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교회가 직면한 것은 고난이었다. 그러나 이 고난은 하나님이 하락하시는 교회의 연단이었으며, 이 연단은 핍박과 시험을 통해서 교회를 강하게 하시는 섭리로 나타났다. 외적으로는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사도들을 위협(행 4:17~21)했고, 내적으로는 교회의 순수성이 잠시 흔들리도록 섭리하셨다.
그런 반면에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담대하게 세우셨다. 외적으로는 교회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교회는 내적으로 결속했다. 주의 성령께서 외적인 박해로 결속하는 교회를 또 다시 내적으로 무장을 시키기 위하여 진실게임을 시작하셨다. 연보를 드리다가 사람이 둘씩이나 죽어나갔다. 이것이 성령을 속이려다가(행 5:9) 들통 난 ‘아나니아와 삽비라’사건(행 5:9)이었다. 교회는 이 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두려움 속에서 다시 거듭났다. 이제 교회는 연단을 통해서 순수하나 강하고 담대해졌다. 이 같은 과정들은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연단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과정적인 섭리였다.
순교자의 피를 마시며 힘을 얻는 교회
그 다음 과정으로는 교회의 사역을 분업화하고 조직적으로 체제를 갖추는 일이 필요해졌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교회는 성장(행 6:1)을 계속했다. 사도들의 사역을 분담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행 6:2~5)가 세워졌고, 교회는 진리와 체제로 무장을 갖추었다. 그 결과 일곱 집사 중에서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하다가(행 7:59~60) 순교의 피를 흘렸다. 성령께서는 스데반에게 충만한 은혜를 주시므로 목숨을 건 증언을 하게 하셨다. 그의 설교는 구약성경을 관통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순교했다. 성령은 예루살렘교회로 하여금 순교자의 피를 마시게 하시므로 그 결과 예루살렘교회는 강하고 담대해 졌다. 성령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의 현장에 사울이라는 한 사나이를 마치 바둑판에 한 점을 찍듯이 지목해 두셨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 박해의 기폭제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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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조원구 목사(성경신학 목회자아카데미 협의회 사회담당/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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