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 의한 시행
성경적 봉사관
Ⅳ. 봉사의 원리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몬 1:14)
봉사의 원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확증하고 가치판단에 따른 자원(自願)에 기인한다. 봉사는 희생과 헌신이 동반되는 일이기 때문에 타자의 권유나 제도적인 장치에 의한 강제성을 띄면 안 된다. 유교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는 자원에 익숙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즉,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자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추천이나 추대에 의존적이다.
봉사는 확고한 가치판단에 따른 스스로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봉사의 지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자원의 신학적인 의미는 인간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시고 감동하게 하셔서 결단하게 하신 신적 섭리의 결과이다. 따라서 자원은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가 아니며, 세속적인 명예나 인기에 편승해서도 안 되고, 억지나 강요에 의해서 실행되어서도 안 된다.
첫째, 봉사의 원리는 억지가 아닌 자원이다.
자원봉사(volunteer)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서 약자를 받들어 섬기거나 사회나 교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자유로운 선택적 결정이 단순한 인간의 자율적 의지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폭적인 섭리의 결과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벧전 4:11). 또한 자원봉사라 하더라도 과도한 욕심에 의해서 억지로 하거나, 타인의 요청이나 강요에 의해서 부담스럽게 참여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복음을 위한 선한 일이 억지로 실행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켰다(몬 1:14).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인간은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선한 가치 확립은 자원봉사의 필수요건이다. 자의든 타의든 억지는 즐거움을 삭감시키고 선한 일을 행하는데 저해요소가 된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건축할 때도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셔서 동참하게 하셨다(출 35:21). 베드로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벧전 5:2)라고 증거한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든, 교회를 위한 일이든지 간에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이다.
둘째, 봉사의 원리는 대가가 아닌 자선이다.
대가와 자선의 차이점은 수고한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과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한 봉사는 반드시 자원이란 명사를 앞에 붙여서 사용한다. 대가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명예나 평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주변의 평가나 인기에 급급하게 되고 순수성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자원봉사는 가치판단과 마음의 감동에 의한 작용이기 때문에 선한 가치에 의미를 두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봉사 자체를 즐기며 만족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실행하는 봉사는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할 수 있음에 감격한다.
사도 바울의 일생은 복음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고 봉사한 삶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기나 명예 그리고 재물에 관심을 표명하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라고 증거 한다. 자원봉사의 핵심은 그 어떤 것에도 대가를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봉사의 직분은 거룩하며, 봉사의 직무는 은혜로운 것이다. 봉사는 자신을 과신하거나 자찬할 업적이 아니며, 자신의 영광과 명예의 부산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결과이다.
셋째, 봉사의 원리는 천거가 아닌 자청이다.
봉사는 명예나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헌신과 희생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봉사를 종용 또는 강요하거나 추천해서도 안 된다. 봉사는 희생이 수반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의 가치 부여나 감동이 없으면 진정성이 상실된다. 한국의 문화는 유교의 영향에 따라 체면과 양보를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수동적이다. 하지만 봉사는 명예나 대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의 여건이나 천거에 좌우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선한 뜻을 깨닫고 사명에 의해서 스스로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은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하고 자청해서 하는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추천이 아니라 도리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나섰다(삼상 17:).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자청하였다. 당시 선지자의 직무는 동족에게 파멸과 회복을 선포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인지하고 과감하게 나선 것이다. 이와 같이 선한 봉사는 주변의 권유보다는 가치와 사명에 따른 자청에 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억지나 강요 또는 외부의 작용에 의해서 시행한다는 것은 비인격적인 발상이며, 지속성과 진정성이 떨어진다. 현대에는 사회적인 약자와 희생을 필요로 하는 봉사의 직무가 요청된다. 봉사는 이웃사랑의 최대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와 교회 그리고 인종과 이념의 구분없이 진지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선한 일을 위한 봉사의 원리는 억지가 아닌 자원에 의한 발로이며, 대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선이고, 주변의 천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청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봉사의 원리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의 분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의지 결단에 의해서 자원, 자선, 자청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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