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09-06-08 17: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1권 제3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선천성(先天性)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선천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인간의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신(神)에 대한 지각(知覺)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무지(無知)를 핑곗거리로 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나마 알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사고력을 모든 사람들 속에 심어 놓으셨다. 그리하여 사람은 언제나 그것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때때로 그 관념을 확대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시며 또한 그가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존귀를 돌리지 못하고 그의 뜻에 자기들의 삶을 드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양심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칼빈의 말은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에 대한 선천적인 지식은 도덕적인 양심에 따라서 선악을 분변하는 능력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神)지식의 선천성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 즉, 종교의 씨앗을 품고 태어나며, 도덕적인 양심의 반응을 통해서 증명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부과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의도는 하나님의 경배에 대한 불신의 책임을 인간에게 부여하려는데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인간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종교성을 마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인 것처럼 설명함으로써 기독교가 혼합주의적인 종교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님에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조물주에 대한 종교적인 성향과 감정적인 종교성이 있지만, 이것은 보편적인 종교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종교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연을 섬기는 자연종교로서의 무속이나 샤머니즘이 발흥했으며, 물질을 숭배하는 유물주의 사상 또는 모든 피조물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범신론 사상도 만연되었다. 또한 악(惡)에 대한 두려움을 타고난 신(神)지식 탓으로 돌리려는 태도 역시 인간의 도덕성에 기초한 칸트의 도덕적 신(神)관념을 연상하게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만한 자연적인 능력이나 지식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갖고 출생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종교성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선천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종교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영혼이 죽게 되었다. 인간의 영(靈)적 기능의 핵심은 종교성과 직결되어 있다. 성경의 예를 보면, 타락한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으며, 아벨을 살해한 가인은 하나님의 앞을 떠났고, 홍수심판 이전의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신(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
  타락 이전의 아담의 영적 상태는 생령체로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였으나, 타락 이후에는 영(靈)적으로 사망한 육체가 되어 피조물을 숭배하는 역기능적인 종교성만 보유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바울의 말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피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을 몰라서 경배하지 못했다는 인간들의 핑계를 미연(未然)에 차단했다. 어떤 이들은 이 문구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선천성으로 오판하여 자연신학을 주장하기도 한다. 자연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아니더라도 자연세계를 통하여 인간이성의 능력으로도 신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는 말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래상태를 의미하는 말로서 생령체의 영적기능을 뜻한다. 타락 이전과 이후의 영적상태는 현저하게 다르다. 타락 이전의 생령체는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고 알 수 있었으나, 타락 이후의 인간은 영적으로 사망한 상태이므로 피조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영적 사망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종교성의 완전한 상실을 뜻한다. 만약 타락한 인간의 종교성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면, 계시 수단의 유일한 도구인 성경과 그리스도의 존재이유도 유명무실하게 된다.
  칼빈이 주장하는 하나님에 관한 선천적인 신지식은 타락 전의 생령체(生靈体)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식하며 예배하는 순기능이 상실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는 역기능만이 작용함을 뜻한다. 인간은 생존상태에 따라서 피조만물로 증거되는 일반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경배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타락 전의 인간은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있었지만, 타락 후의 인간은 일반계시만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종교성도 가질 수가 없다. 타락 이후의 종교성이라 함은 절대자 하나님을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이 요청하거나 조작한 이방신관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보편적인 종교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생사(生死)에 대한 규정은 영(靈)의 상태에 따라서 판가름되며, 영의 근본적인 핵심기능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유무에 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며 경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타락한 인간의 이성적인 기능은 자연법칙을 변별할 수 있고 자연에 미치는 사건이나 과학적인 것에 국한 된 것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내용들을 부정한다. 이미 신인식의 근본적인 기능을 상실한 인간의 이성은 특별계시의 조명과 중생한 영혼을 보유하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두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선천적인 지식은 타락 이전의 인간에게는 일반계시를 통해서 인식된 것을 말한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후천적인 지식은 타락한 인간의 영혼이 중생된 후에, 특별계시로 주어진 ‘성경’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인식되며, 그 이후에는 습득된 신지식을 통해서 피조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타락으로 인한 영적 사망의 상태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락의 결과인 영적 죽음의 상태에 대한 이해부족이며, 특별계시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칼빈이 주장하는 인간의 종교성은 타락을 분기점으로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명백하게 규명해야 될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한 상태로는 하나님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인류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의식은 ‘명칭’만을 의미할 뿐이지, 하나님의 실체를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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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제4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결핍
제1권 제2장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의의와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