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09-06-08 17: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1권 제6장 성경의 필요성


칼빈은 본 단원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안내자와 교사로서 성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이라는 빛을 덧붙여 주셔서 사람에게 그 자신을 알게 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더 친근하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특권을 베푸신 것이 전혀 헛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태초부터 자기 교회를 위하여 이를 계획하셨고, 그리하여 갖가지 일상적인 증거들 이외에 자신의 말씀을 주셨으니,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을 깨닫는데 필요한 더 직접적이고도 더 확실한 수단인 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성경이 하나님을 깨닫기 위한 절대적인 방편이며, 교회를 위해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밝힌다. 칼빈의 말대로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그 주장에는 공감한다. 하나님께서는 일반계시(자연계시, 초자연계시)를 통해서 피조만물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섭리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피조물에는 저주가 덮혀 짐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오직 성경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Selbstoffenbarung Gottes)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칼빈은 성경의 기록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명확하게 하셨고, 따라서 그들이 인간의 모든 견해들을 무한히 능가하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가르침이 계속 이어지고 진리가 온 시대를 넘어 세상에 영원토록 그대로 남아 있도록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에게 주셨던 동일한 말씀을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마음에 심겨지기 전에는 절대로 오류가 그 마음에서 제거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성경 없이는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말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칼빈은 성경의 필요성과 기록목적을 확실하게 주장한다고 보여진다. 이 세상의 어떤 학문도 하나님을 정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지혜나 지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초대교회시대의 고린도 교회는 세상적인 지식과 지위를 자랑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으로 오판하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주장한다. 바울의 말대로 계시의 절정으로 드러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지혜나 학문적인 지식으로 이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를 우둔하게 하셨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이성에 의한 지혜로는 계시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를 이해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자연법칙의 범주 안에서 과학적인 실험분석의 결과에만 의존하는 과학적 합리주의거나, 인간의 자율성과 진지함을 숭상하는 자기 미화(美花)의 윤리적 합리주의 이념 혹은 이상사회건설을 위한 사회적 합리주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굳이 성경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만약 과학적인 기준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인간의 생명과 우주의 근원도 입증해내지 못한 시점에서 시공형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초자연적이며 초과학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겠는가, 또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입증되지 못했지만 엄연히 사실로 드러난 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인간의 윤리성 함양과 자기 미화 그리고 이상사회건설은 신(神)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며 죄성(罪性)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피조 인간이 어찌 자율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율적인 능력과 죄에 대한 정화기능이 있으며, 심판과 종말이 전제되어 있는 세속적인 피조세계에 어떻게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로 이상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특별계시로 주어진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통로는 없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굳이 성경이 필요한 것은 사회질서와 공동체 생활의 규범을 위한 윤리도적인 표준서로의 활용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이 성경기자들에게 역사하사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동기와 목적을 성경신학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자기의 영광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피조만물이 저주를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게 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는 말로서 인간의 타락과 오용(誤用)된 종교성을 언급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특별히 계시하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깨달아 영원무궁토록 찬양하게 하시려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의 필요성을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첫째,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를 재교육하는 과정에서 과거 출애굽의 역사를 해석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는 이적을 경험하게 한 후 하나님을 알게 하셨으며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난 뒤,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고 찬양하게 하셨으며 선지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예언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의 섭리목적이 오직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려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의 필요성과 목적 역시 하나님을 알고 경외케 하려는 데 있다.
  이런 내용은 신약성경도 증거하는데, 예수께서 수난을 위해 기도하시는 내용 가운데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는 말로써, 자기가 성육신(聖肉身)하여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신다. 바울은 복음의 정의를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라는 말로써 증거하고 있다. 이 말은 복음이 창세전부터 감추어진 비밀로서 하나님의 명령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것으로 결국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려는 목적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광대하심에 대해서 알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교회의 표지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각종 지혜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촉구한다.
  둘째, 성경은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하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영적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기 때문에 자생적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선택한 자들에게 ‘성경’을 깨달아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밖에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문자화되어 책으로 구성되기 이전에도 인류 가운데서 구원해야 될 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범죄 후 직접 가죽 옷을 제작하여 입혀주시고, 아벨에게는 제물을 열납하여 주시며, 에녹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동행하여 주시고, 노아에게는 방주를 통해서 홍수에서 구출해 주시며, 아브라함에게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어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고, 다윗에게는 언약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나라를 건립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해 주셨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몸을 입혀서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택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깨달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특별한 계시이다. 이런 특별계시를 문서화하여 책으로 구성한 것이 ‘성경’이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계시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 필수적이다. 박용기 목사는 성경의 효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은 성경 내용이 하늘의 신령한 지혜, 즉 특별계시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늘로서 온 참 지혜이신 예수를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구원이며 영생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만사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의 생각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됨으로써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여 믿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유일한 계시서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므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신인식의 도구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약간의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의 사전적 의미는 언어로 전달되는 내용이나 문장 또는 용어를 말한다. 철학적 의미는 내면적인 정신세계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람이 말하고 이야기하는 단순한 어구(語句)나 음성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이해되는 공통적인 의미로서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이성적 지능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로고스라는 말은 밖으로 표현된 말의 뜻만 아니라, 개념, 의의, 정의, 설명, 이유, 학설, 사상 등의 뜻 또는 언어능력, 사고력, 이성(理性)의 뜻이나 비율 등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말에 신비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원시적 신앙과 이성을 감성으로 부터 분리시켜 그 우위에 두는 그리스 철학의 이성주의적 경향으로 해서 로고스는 실체화되고 신성(神性)화되어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나 스토아(Stoa)학파에서는 일체를 관통하여 지배하는 이성(세계이성)으로 간주한다. 유대의 필로(Philon)는 신(神)의 제위력의 총체로, 플로티누스는 신(神)의 사고내용으로 이해했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로고스(logos)는 하나님의 작정, 계획, 뜻, 사상을 뜻하고, 영원세계에서의 실존을 의미하며 피조세계의 기준에서 보면 하나님의 관념이다. 요한은 로고스에 대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언급한다. 이 말은 계시의 절정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존재하셨고, 말씀으로 창조에 참여하셨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를 뜻한다. 말씀(logos)의 본질은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곧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뜻으로서 구약성경 말씀에 의하여 계시된 본질이며,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뜻으로서 신약성경 말씀에 의하여 계시된 본질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특별계시 내용이며 말씀(logos)의 형식이고 그 내용의 본질은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칼 바르트(Karl Barth)와 같이 성경을 세 가지 양태로 구분하여 이해하게 된다. 바르트는 성경을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된 말씀’과 인간의 말로 ‘기록된 말씀’(성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건을 재현하는 ‘선포된 말씀’(교회의 설교)”으로 구분한다. 바르트의 말씀에 대한 세 가지 형태의 구분은 성경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을 담아놓은 말씀(logos)의 형식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서 현상만 판단하여 분류한 것이다. 바르트는 문서화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해하면 되는데 이것을 굳이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그 의도는, 그리스도의 사건과 성경 그리고 선포행위를 각기 분리된 차원에서 이해한 방식으로서 말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사건을 따로 분류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행적 가운데서 초자연적인 이적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을 역사적인 것과 초(超)역사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시간관에서는 창조된 시간과 타락한 시간 그리고 우리의 시간에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써 형성된 참된 시간 즉, 계시의 시간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은 바르트의 역사와 시간에 대한 구분법은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이며 비과학적인 사건들을 역사적인 실재사건이나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시간과 역사 밖에서 발생한 비(非)실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할 때도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기하면 될 것을 의도적으로 ‘역사적’이란 용어를 수식어로 사용한다. 바르트가 ‘역사적’이란 말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예수의 행적 가운데서 초자연적인 이적이나 기적을 실재사건이나 사실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기적이며 완전한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에 의한 역사적인 예수의 행적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법과 초자연적인 방법 모두를 활용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바르트의 성경 구분법은 성경의 유기적 완전 영감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논박에 대해서 바르트주의자들은 어쩌면 성경의 완전영감에 대한 진정성 입증에 대해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적인 설교를 따로 구분한다. 그리하여 설교자에 의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청중에게 감동으로 반영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며, 성서를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텍스트로서의 성경자체는 단순한 책에 불과한 것이고, 그 책이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형태로 나타나야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된다는 의미가 된다. 성경에 의하면 말씀을 듣고 구원에 이르는 자도 있지만 반면에 넘어지는 자가 있다고 증거한다. 이러한 경우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말씀을 듣고 넘어지는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이해나 수용여부에 따라서 말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 바르트의 사상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성경의 유기적 완전 영감에 대한 성경관의 오류에서 출발한 것이 그 이유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과 그리스도의 성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존재하신 분이자,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된 내용을 문서화 하여 기록한 성경을 설교라는 형태를 빌어서 또 다른 장르로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성경은 그 자체가 말씀의 본질을 담고 있는 계시의 내용이며, 그 계시내용을 기록한 특별한 서적이고, 그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는 것이 바로 설교행위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내용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법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유기적 감동에 의해서 기록된 완전 무오한 책이다. 또한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경외할 수 있으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절대적인 기능을 겸비한 생명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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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제7장 성경의 권위
제1권 제5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명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