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제1권 제9장 성경과 성령의 관계성
칼빈은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단적으로 정의한다. 첫째,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용도에 있어서 완벽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성령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종류의 교의를 조작해 내어서 우리로 하여금 이미 인정된 복음의 교의에서 떠나게 만드는 그런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복음으로 말미암아 제시되는 바로 그 교의를 우리 마음에 인쳐주시는 그런 분이신 것이다.
위의 말은 하나님의 계시로 완성된 성경을 버리고 또 다른 계시를 받고자하는 광신자들을 반박함으로써 완성된 계시 즉, 성경만을 의존하는 신앙관을 피력한다.
둘째, 신비주의자들은 계시의 연속성을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성경으로 계시가 완성되었고, 더 이상의 계시가 필요 없으며, 성경만으로 하나님을 알아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성령의 활동을 제한시키는 행위로 규정해서 반박한다. 칼빈은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들에게 성경계시의 충족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사탄의 영이 성령을 빙자하여 숨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 속에 새겨 놓으신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그 자신을 알아보도록 하신 것이다. 그 분은 성경의 저자이시며,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르게 변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성경에 자기 자신을 계시해 놓으신 그대로 언제나 계시는 것이다.
칼빈은 광신자들에게 성경은 성령의 계시역사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며, 성령이 성경을 통해서 역사한다고 해서 성령의 활동이 문서(성경)에 예속되거나 위축된다는 말은 상식 밖의 판단으로 일축한다.
셋째,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성경계시만을 전적으로 의존하여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들을 비방한다. 칼빈은 이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령께서 성경에 표현하시는 그의 진리 속에 내재하고 계시므로 그 말씀에게 정당한 위엄과 존경을 돌릴 때에 비로소 성령께서 그의 능력을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기록하셨고, 그 동일하신 성령을 보내사 그 말씀을 효력 있게 확증케 하심으로써 그의 일을 완성하고자 하신 것이다.
칼빈의 말은 성령과 말씀은 함께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의 계시로 완성된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는 없으며, 다른 계시를 요구하거나 의존하는 것은 성경의 충족성과 무오성 그리고 절대성을 무시하는 견지에서 판단해야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보수주의신학을 지향하는 자들의 일부는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며, 초대교회 때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한다. 초대교회에는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의 시대로서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이 완성된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알기 위한 새로운 계시가 필요 없다. 이유인즉,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며, 하나님을 알기에 완전하고 무오한 것이 때문이다. 만약 성경 이외에 또 다른 계시가 필요하다면, 성경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계시로서의 절대성과 하나님을 아는 데 필요한 도구로서의 충족성에 결함(缺陷)이 있다는 말이 된다.
성경계시의 완전 무오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성경관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관에 따른 다양한 현상을 살펴보면, 첫째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란 견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성경 외에도 성경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문서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성경 이외의 동등한 가치를 주장하는 견해는 전통적인 권위에 의해서 전승된 성전(聖傳)을 성경과 동일시하는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을 가리킨다. 반면 성경 외에도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신비주의자들을 지칭하는데 칼빈은 이들을 ‘광신자’라 칭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신․구약성경의 완성을 통해서 종결되었으나,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 지금도 계속해서 주어진다고 한다. 이 두 부류의 주장은 성경의 충족성과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비성경적인 이론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도구로서 완전하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통로로서 완벽한 진리이다(갈1:8, 12). 그러므로 성경 이외의 어떤 도구나 방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려는 태도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와 계시의 충족성을 실추시키는 결과가 된다. 특히 칼빈은 성경과 교황의 권위를 동일시하려는 카톨릭주의자들의 오만한 태도와, 성경을 버리고 하나님의 또 다른 계시를 인정하며 추구하는 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둘째,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부분 이외에도 인간들의 말이나 다양한 형태의 문화와 역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성경이 인간들에 의해서 편집된 문서들의 집합물이며, 당대 신앙공동체의 삶의 정황에서의 욕구를 반영하는 신화(神話)들의 모음집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의미이다. 그래서 편집과정상의 역사적인 오류도 있으며 내용상에 있어서도 반복, 상충되는 부분이 있음을 주장한다. 자유주의신학자들의 견해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완전 무오한 말씀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완전한 신(神)적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는 종교적인 차원의 보편적인 문서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經典)이라 한다. 이 말은 성경을 보편적인 종교차원의 경전과 유사한 부류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경은 보편적인 종교의 차원에서 분류된 경전의 한 분과가 아니다. 기독교의 성경은 불교의 팔만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이슬람교의 코란 등과 같은 견지에서 취급되는 경전이 아니다. 기독교는 엄밀히 말하면 종교의 한 분야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이다. 즉, 종교란 최고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최고의 가르침은 기독교 진리 외에는 없으며, 기독교의 신(神)은 절대적이며, 유일하며 영원한 존재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절대종교이며, 기독교의 계시는 절대계시이고, 기독교의 정경은 절대 진리이다. 기독교의 정경인 성경을 경전의 한 부류로 이해한다는 말은 기독교를 모든 종교 중의 한 형태로 취급한다는 것이며, 기독교의 본질이 상실된 보편적인 종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건전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인 종교가 아니며, 성경은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윤리 도덕서가 아니다. 성경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며,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게 하는 절대종교이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를 절대종교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성경적인 종교관이다. 종교다원화 현상은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이 종교적인 형태만 다를 뿐이지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독자적인 노선을 고집하기보다는 포용력을 갖고 모든 종교가 하나의 틀 안에서 공존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와 같은 성경관의 오류는 신비주의나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혼합종교의 양상을 띠게 되어, 주술적인 신관(神觀)이나 기복적인 신관 또는 도덕적인 신관을 형성하게 된다.
성경신학적인 성경관은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주어진 계시의 산물이며, 하나님의 유기적인 영감(靈感)에 의해서 기록된 완전 무오한 점을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완전하게 충족된 것이며, 더 이상의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절대적인 성질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완벽한 구조체계에 의해서 논리적인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실제의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는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셨고, 완성된 계시의 말씀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며, 생각나게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완성된 특별계시인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성경자체가 성령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일반 문서나 타 종교의 경전과는 근본적으로 성질을 달리한다.
바르트는 ‘문서’(텍스트)와 ‘선포’(케리그마) 그리고 말씀이 ‘감동’을 주는 세 가지의 양식과 기능에 따라서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규정지으려 한다. 그렇다면 말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거나 선포되지 못한다면 단순한 문서에 불과한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말씀(성경)은 기록과정과 방법에 있어서 이미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치밀하고 완전한 역사로 완성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선포활동이나 반응결과가 원저자의 존재유무나 권위 그리고 성경의 진위나 신빙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성경을 심층적으로 탐구해 보면 바르트 처럼 굳이 삼단계로 구분지어 이해할 필요가 없다.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이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저자의 의도에 따른 지도는 필수적이다. 성령은 성경의 원 기록자이며 성경해석의 실질적인 교수이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저자이며 교수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한다. 단, 인간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만 말씀이 된다는 표현보다는, 성령께서 말씀을 해석해 주셔서 깨닫게 하시면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깨닫지 못하게 하시면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혹자들은 성경책 자체를 신성시하여 미신적인 태도로 성경책을 다루거나, 아니면 설교 자체를 성령의 역사로 간주한다. 성경해석이나 강론은 성령의 조명과 역사가 필수이다. 하지만 강론자가 하나님의 대리자인 ‘목사’이기 때문에 라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론하기 때문에 라든지, 선포내용 자체를 무조건 성령의 역사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성경의 내용을 원저자의 의도에 따라서 바르게 해석하게 한다. 그러므로 텍스트가 ‘성경’이라고 해서 자의적인 해석이나 은유적인 설교를 성령의 역사로 오도하는 것은 금물이다.
칼빈의 지적대로 성령과 성경의 관계는 상호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성경이외에 어떤 계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와 신빙성을 가진다. 그 어떤 권세나 말(言)이나 문서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신․구약성경 66권으로 완성되어 종결되었다.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성경은 완벽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제1권 제10장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제시 |
제1권 제8장 성경의 신빙성 |